- 짧아진 숨으로 긴 호흡을 말해준 정태춘, 박은옥 공연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나는 유튜브 원시인, 기껏해야 좋아하는 음악 모음이나 듣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심 있는 과학, 천문분야 영상을 조금씩 클릭하다 보니 여름쯤엔 과학 콘텐츠 구독을 열 개쯤 하고 있었고, 겨울이 되자 드라마나 영화 핵심 몰아보기, 온갖 짤(웃긴 이미지나 짧은 영상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나 쇼츠(shorts, 짧은 영상 콘텐츠)를 줄줄이 이어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분, 알고리즘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시작이 더뎠을 뿐 짧디 짧은 콘텐츠들은 마약에 버금가는 중독성이 있었다. 지루한 전개를 능숙하게 건너뛰고 어색해진 간극은 재치 있는 말솜씨로 메워주는 몰아보기 영상들이 흘러넘쳤다. 재미있어진다 싶으면 등장하는 광고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나이와 신분(?)에 걸맞지 않게 게임 유료 결제는 진작 입문하고도 이상하게 유튜브 프리미엄 회원이 되기는 싫었다. 이미 쓰고 있는 걸 더 편리하게 이용하겠다고 지갑을 여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중독성 강한 이 녀석은 나를 굴복시켜 결국 지난달 떨리는 손으로 유료 결제를 누르고야 말았다. 자꾸 내 잇몸과 혈관을 걱정하는 정체 모를 의사의 약 선전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진 게 아니라 21세기형 인간에 합류했다 여기기로 했다.
개학 후 처음 광명에 올라간 주말, 동생과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정태춘, 박은옥 공연에 갔다. 학교를 옮긴 지난해보다 수월한 신학기가 될 거라 기대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학생 수에 맞춰 옮긴 교실 정리로 뼈마디가 욱신거렸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학생 민원 뒷수발로 정신이 쏙 빠진 채 흐른 시간이었다. 더욱이 두 자매만의 외출로 단단히 삐진 엄마의 굳은 얼굴을 뒤로하고 왔으니 마음 편할 리 없었다. 두 시간짜리 공연, 우리는 웬만하면 절반만 보고 나오기로 의견을 모았다. 깜박 졸면 서로 꼬집어 주자는 우스갯소리도 해보았다.
다섯 시, 시작을 알리듯 불이 꺼졌다. 드럼, 건반, 베이스 기타, 코러스까지 갖춘 제법 번듯한 공연이었다. 가운데에 좌담하듯 둥근 탁자를 놓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주인공 정태춘, 박은옥이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기타 소리. 80년대 학교에 다녔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노래, <시인의 마을>이었다.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아이고, 역시 세월이 많이 흘렀군.’ 첫 소감이다. 익숙하고 정겨웠지만 끊어질 듯 위태롭게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소리, 칠순 나이가 배어 나왔다.
이게 웬걸,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젊어졌다. 학생 시절 ‘마이마이’(1980년대 생산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통해 익숙하게 듣던 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려오며 나의 10대, 20대의 장면 장면이 실재인 듯 펼쳐졌다. 이어폰을 한쪽씩 꽂고 친구와 같이 그의 목소리를 듣던 한때, 도서관에서 벼락공부하며 듣던 어느 밤, 막걸리 주점에서 내가 좋아하던 또 다른 정태춘의 노래 <서해에서>를 눈감고 비장하게 부르던 대학 동기의 모습까지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흘러나왔다. 돌이켜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두 번째 곡은 박은옥의 차례. 반주로 함께 할 정태춘의 기타 줄 조절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쇼츠 세 개는 족히 보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소회를 전하는 박은옥의 말을 지루한 줄 모르고 들었다. 이젠 세상이 찾지 않는 서운함, 새로 만든 노래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같은 불안, 그럼에도 외면하지 못한 노래에 대한 사랑까지 하는 말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다니, 70세 전후인 그들의 나이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왔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은 웅장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박은옥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아했지만 종종 자막과 다르게 가사를 전했고, 기타는 자꾸 줄을 조여야 했으며, 정태춘의 호흡은 짧게 끊어져 마음을 졸였다. 가사는 울림이 있지만 대부분의 가락이 차분해서 박수를 치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실수가 부족함으로, 느림이 지루함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웃다 보니 모든 과정이 공연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생과 나는 졸지도, 중간에 나오지도 않았다. 시간이 길게 느껴지거나 실수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 대부분이 미소를 띠고 있는 걸 보니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어야겠다. 한 시간짜리 콘텐츠마저 몰아보는 지경에 익숙해지지는 말자.’
중독기간이 짧았던 덕분일까, 유료 결제를 해지하고 다시 광고를 보며 시청하게 되었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주로 보는 영상도 다시 과학, 천문 콘텐츠로 돌아왔다. 유튜브를 완전히 외면할 자신은 없지만 앞으로도 몰아보기나 쇼츠를 굳이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같은 책을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하나 생생히 떠올릴 만큼 읽고 또 읽고, 좋아하는 가수의 숨소리까지 흉내 낼 정도로 노래를 듣고 또 듣던 날들이 있었다. 반복 속에서도 늘 새로움을 찾을 수 있었고 긴 호흡이 결코 지루하거나 싫증 나지 않던 시절이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그때의 나를 다시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울림이 있는 공연을 느끼고 여운을 간직할 힘이 있으니 말이다. 70이 넘어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두 가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를 격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