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과 마음의 평형추가 묵직해지길
오른쪽 발목 통증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다. 예전에 아킬레스건을 다친 적이 있어서인지, 몸에 비해 가늘가늘한 발목 탓인지 유독 오른쪽만 쉽게 접질리고 오래 걸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쑤시듯 아프다. 집에는 뿌리고 바르고 붙이는 온갖 종류의 파스가 늘 대기 중이고 보호대도 테이프나 밴드형, 철심이 있고 없는 것 등 안 써본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병원문도 심심찮게 두드렸다. 온갖 검사를 해도 늘 뼈에는 이상이 없다며 근육통이나 염증이라는 병명이 나왔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는 이런 진단이 참 애매하고 막연하다. 근육이 아프다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건지, 염증은 무슨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잘 먹고, 잘 쉬고,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나아요.’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도수치료, 충격파, 재활치료, 침 맞고 뜸뜨기에 추나요법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안 해본 치료가 없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계속되니 ‘완치’는 포기했다. 그저 반갑지 않은 데 갈 생각 없는 불청객이려니 지내고 있다.
만성(慢性), 버릇이 되다시피 하여 쉽게 고쳐지지 아니하는 상태나 성질.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만성 습관과 행동들이 잔뜩인데 만성 질환까지 더해진 나의 몸뚱이. 도대체 나의 발목은 무슨 버릇이 잘못 들어 이 모양일까.
방학이 되자마자 퍼스널트레이닝(PT)을 등록했다. 8년 전인가, 개인운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사가 어찌나 몸 상태를 염려하던지 러닝머신과 스쾃만 내내 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아령은 한번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려는 순간, 다음 달부터 문을 닫는다고 했다. 늘 혼자만 운동하고 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데. 하나를 보고 열을 알아버린 기분으로 외면하던 PT를 다시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버릇이라 여기고 넘어가기엔 심각해진 몸무게와 몸 상태.
하고 많은 운동 중에 왜 PT를 택했냐고? 나의 자유의지를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상태를 알고 특성에 맞춰 조언해 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더 정확히는 투자금이 필요했다. 전문가에게 지불한 강사비는 추워도, 꾀가 나도 헬스장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개 시민인 나는 거금(?)을 이불속에서 날릴 배짱은 없었으므로. 과거 안 좋았던 경험치도 있고 이 나이에 다이어트 식단 관리나 겉보기 근육 만들기에 주안점을 두는 곳을 만나면 서로 불행할 뿐이니, 어떤 곳을 선택할지도 나름 신경 썼다. 그 결과 새해 특별 할인, 최신 장비 구비, 24시간 이용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구도, 환경도 그다지인데 비용도 만만치 않은 헬스장에 등록했다. 대표 혼자 운영하며 개인별 맞춤 관리에 초점을 두는 방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형사라도 된 듯 강사는 온갖 질문을 해댔다. 몸 상태, 유료운동 경험과 시기, 심지어 과거 병력까지 한 시간 가까이 묻고 적기를 반복했다. 나는 법이라도 어긴 사람 마냥 잔뜩 졸아 부실한 운동 이력을 자수(?)했다. 이윽고 그는 “회원님은 근력을 기르거나 체중을 조절하는 게 문제가 아니네요. 첫째도 재활, 둘째도 재활입니다.”라는 수사방향을 정했다. 고작 한두 달 운동하고 날씬하고 근사한 몸매가 될 거라는 환상 따윈 가지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15회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 몸무게는 1그램도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내 몸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강사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발과 발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며 중력을 거스르는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한 발로 5초나 제대로 서 있었을까? 첫날부터 내가 얼마나 발목 힘이 미약한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두 발로 서있을 때는 몰랐는데 한쪽을 살짝 들기만 해도 비 맞은 강아지마냥 바들바들 떨어댔다. 이렇게나 부실한 발목이었다니. 약한 나의 오른쪽 다리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왼발의 운동 능력이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왼쪽의 기능이 떨어져 오른발에 더 많은 의지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고장이 잦은 걸로 보인다는 의견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운동 능력은 오른쪽이 훨씬 더 나아 보였으므로 동의할 만한 진단이었다. 얼뜨기 취급한 오른 발목이 실제로는 더 많은 힘이 되었다는 사실에 이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반백년 넘게 버릇처럼 가져온 습관, 그로 인해 닳고 녹슬어버린 몸과 마음이 몇 차례의 땀과 노력으로 달라질 리 만무하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요동이 줄어드는 한 발 서기. 바닥을 지지하는 힘이 생기니 노력할 맛이 난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의 평형추도 한결 묵직해진 것 같다. ‘내 노력으로 달라질 게 없으니 흔들리며 살아갈 밖에’라는 무력감이 조금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발에 힘주어야 하는데 허리만 세우려 애쓰고, 왼발을 고쳐야 하는데 오른발에 더 힘주며 살았던 건 아닐까. 당장 지탱할 수 있는 힘만 최대치로 쓰면서 살다 보니 만성병을 달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 녀석과 헤어져 단단히 두 발로 서기 위해서 이제라도 발목 힘을 제대로 길러봐야겠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온전히 의지해서 순간을 메우지 말고 제대로 서기 위해 채워야 할 것을 돌아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