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이 변하도록 즐기는 사람들에게 배웁니다
교사생활 10년 차였나, 교실놀이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학급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직접 체험하는 활동이었음에도 첫 시간은 어찌나 근엄하고 정숙하던지, 행여 놀이 규칙을 잘 몰라 실수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한 교사들 때문에 강사들도 덩달아 말이 굳어갔다. 시간이 흐르며 분위기는 조금씩 풀렸지만 ‘즐겁게’ 보다는 ‘잘’하려 애쓰는 우리들을 보며 강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은 중 3 다음으로 인기 없는 수강생”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요즘 교사 문화는 많이 달라졌으니 ‘라떼 시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꼭 교사여서만은 아니다. 머리가 굵은 뒤 삶의 큰 줄기를 옳고 그름에 두었던 나는 10여 년 전 까지만해도 쓸데없이 비장하고 스스로에게 냉정했다. 옳음에 온몸 바쳐 살지도 못하면서 놓지도 못하니 늘 성에 차지 않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공간과 사람들이 있어 좋았지만 돌아서면 마음이 허전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는 게 억울했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삶이 목표가 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할까 싶어 미리부터 불안했다. 열심히 살아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즉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고 했다는데 나는 좋아하기는커녕 아는 것도 미숙한 초보였던 셈이다.
8월의 마지막 금요일, 같은 글 모임 회원이 속한 통기타 동아리 10주년 기념 공연에 갔다. 글은 물론이고 통기타에 그림, 드론에 시니어 모델 등 다양한 취미를 자랑하는 회원이다. 절반은 의리로, 절반은 호기심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한 직장도 10년을 다니면 장기근속 휴가를 준다. 그만큼 이어감이 쉽지 않은 기간이라는 뜻일 게다. 먹고사는 일도, 기술을 배우는 일도 아닌데 강산이 변할 시간을 이어온 취미라니,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혼자는 어색하여 문화공연에 관심 많은 동료 교사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흔쾌히 응해준 그가 실망할까 봐 “공연 수준은 기대하지 마시라” 미리 연막을 쳤다.(C 회원님, 미안합니다.)
당진 문예의 전당 소 공연장, 예상외로 좌석이 가득 찼다. 통기타는 7080 세대를 대표하는 악기, 개인 공연과 듀엣, 단체 합주 내내 익숙한 노래들이 이어지니 정겹고 편안했다. 공연 수준에 편견을 갖고 미리부터 평가절하한 게 미안했다. 목소리와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은 떨렸지만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들이 10년을 즐길 수 있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2부 초대가수로 등장한 유튜버 ‘노래하는 대장장이’. 구독자가 150만, 이 아닌 150명인데 “여기 있는 분들이 구독해 주면 두 배가 될 수 있다”라고 하여 빵 터졌다. 가수를 꿈꾸는 직장인인 듯했다. 151번째 구독을 누르며 살펴보니 버스킹과 이런저런 공연에 참여한 이력이 상당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오래 노력했는데 전문 가수도, 유명 유튜버도 되지 못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하지만 절정의 시간, 눈을 감고 자신에게 푹 빠져 열창하는 그는 이미 아이돌, 온갖 조명보다 밝게 빛나는 주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여 이 길을 계속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 내내 진정으로 즐기는 자(樂之者)의 다양한 얼굴들과 함께하며 유쾌함과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한 동료도 다행히 같은 기운을 받았다 한다. “과연 우리도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일까”를 슬쩍 나눠보았다. 최고 관리자를 앞둔 그는 필요한 일에 최적화된 삶을 살아왔다며 좋아하고 즐길 거리로 채워져 있는 나날들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나 역시 동감이다. 즐기기는커녕 좋아하는 것들을 간신히 찾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으려나.
어느덧 50대 후반, 적어도 숙제처럼 하루하루를 살거나 나를 깎아내리느라 시간 낭비를 하지는 않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며 표현을 아끼지 않을 만큼의 솔직함도 배워가는 중이다. ‘교사’라는 사회적 명칭이 사라질 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자연인이 되었을 때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지막 덕목은 즐기는 자가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공연에서 만난 그들 같은 얼굴을 할 수 있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