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와 연구사가 늘봄교실 업무 적임자!
한국에서 성인 한 명이 돈을 벌어 나머지 가족을 부양해서는 변변한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맞벌이가 기본값이 되면서 방과 후 아이들을 보살필 전담 보호자가 있는 가정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아이들은 방과후교실이나 학원 뺑뺑이를 돌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온갖 일을 도맡던 가정주부가 방과후 돌봄 역할을 담당했다면 지금은 학교 내 돌봄시설과 학교 밖 기관에 돌봄을 하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밖 돌봄시설의 대표격이 바로 태권도이다. 하교 시간이면 학교 앞에서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갈 사범님'들'이 태권도 도복과 주짓수 도복을 입고 기다리시며, 하나둘씩 모인 아이들은 줄지어 도장으로 이동한다. 도심 학교당 3개 정도의 태권도 학원이 있을 정도로 K-보육의 대표격 학원이며, 수강생을 데려가기 위한 태권도 학원간 경쟁도 치열하다.
공교육에서도 방과후 돌봄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에 2005년부터 방과후학교가 시작되었다. 저렴한 수강료로 학교 시설에서 외부강사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방과후강사들의 일자리도 창출했지만 학교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수업 존폐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마음 편히 믿고 맏기기에는 한계도 있었다.
학교 안팎 돌봄공간의 환승역 역할을 하는게 돌봄교실이었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 학생들이 간식도 먹고, 예체능 수업에 참여하고, 학원 또는 방과후교실로 이동할 수 있는 학교내 보금자리 역할을 돌봄교실이 담당했다. 돌봄교실 초창기에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주체는 돌봄교실과 전혀 관련 없는 교사였다. 돌봄교실 운영에 필요한 교실 인테리어, 기자재, 간식비, 강사 선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필요한 서류는 담당 교사가 가르치는 일과 별도로 도맡아 했다. 쉽게 말하면 담당 교사가 수업에 참여하는 강사로 들어가지 않을 뿐, 나머지 일은 모두 관여해 돌봄교실이라는 사업을 굴려나가는 경리직원이었던 것이다. 지역에 따라 돌봄교실 업무를 하는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이라는 돈 안 드는 당근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돌봄교실 업무가 왜 교사의 일이냐는 합의가 생기면서 학교는 공간과 예산만 제공하고, 돌봄전담사가 돌봄교실 업무를 처리하면서 교사는 돌봄교실 업무와 멀어졌다.
돌봄교실로는 돌봄교실이 부족했는지 늘봄교실이라는 새로운 교실이 생겼다. 늘봄교실은 돌봄교실과 방과후교실을 통합하는 사업으로, 등교 전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방과 후 최장 8시까지 학교에서 ‘늘 돌보는’ 방식의 돌봄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학교 사정에 따라 등교 전에는 돌봄을 제공하지 않기도 하고, 돌봄 교실보다 종료 시간이 짧기도 하여 실제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는 사업인데, 별도의 돌봄 기관이나 인력 및 시설은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시작되었다. 늘봄교실 운영 기반을 마련할 때까지만 교사가 한시적으로 업무에 동원된다는 조건으로 또다시 교사는 행정 업무에 최전선에 섰다.
저출생 이유 중 하나로 아이들이 방과 후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 생긴 제도가 돌봄교실, 늘봄교실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보호자가 빨리 퇴근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오래 붙잡고, 그 아이들이 머무를 ‘OO실’을 번듯하게 꾸며 놓고 보도자료 내며 자랑하면 갑자기 줄어들던 신생아가 늘어날까? 보호자들의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정책은 마련하지 않고, 학생들을 잡아 학교에 오래 머무르게 할 테니 보호자는 장시간 노동해서 비싼 집(아니면 비싸질 집) 사라는 정부의 원칙은 집권세력과 상관없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올해 기존에 방과후교실 전용으로 쓰던 교실을 늘봄교실에 내주면서 기존 방과후교실에서 진행하던 수업이 과학실로 옮겨졌다. 과학실은 사용 한도를 초과하여 추가 교실이 필요해졌고, 방과후교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저학년 교실 대여 협조를 요청하는 쪽지가 왔다. 저학년은 늦어도 1시 30분에는 수업이 모두 끝나니 그 이후에는 교실을 좀 빌릴 수 있게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보자마자 삭제 버튼을 눌러 머리에서 지웠으나 오후에 담당자에게 협조 요청 전화가 왔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학년 선생님들께 여쭤는 본다고 답했다. 약속한 듯이 곧 교감선생님이 오셔서 방과후교실 수업 진행할 때 옆에서 업무를 보거나 연구실에서 업무를 볼 수 없냐고 하셨다.
끝나고 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여비부지급 출장을 내주시거나 유선 마우스까지 달려 있는 구식 연구실 컴퓨터를 학교에서 가장 좋은 사양의 본체와 듀얼 모니터로 바꿔주시면 한 번 생각은 해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수업 끝나고 일이 없어서 그냥 방 비워주고, 다른 실에서 희희낙락하다가 퇴근할 수 있으면 몰라도 그렇게 놀고먹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 특히 학교 규모가 작아져서 한가한 교사는 없다.
동학년에서 육아시간을 쓰는 선생님께도 빨리 알려드리려고 전화했는데 안 받으셔서 학년 단톡방에 있었던 일을 알려서 대비할 수 있게 안내했다. 결국 다른 학년 선생님들의 협조로 방과후수업을 진행할 공간을 찾았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이렇게 정책입안자가 원인을 잘못 짚으면 잘못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잘못된 정책은 일선 현장을 혼란에 빠뜨려 혼란을 틈타 업자들만 이득을 본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행정 업무를 하기 위해 전직한 장학사, 연구사들이 관할 학교의 늘봄교실 담당자가 되어 강사 뽑는 일부터 내부 인테리어 품의까지 담당해야지 교사는 이런 비수업적인 업무에 매달릴 체력도 시간도 없다. (교실에서 멀어진 장학사, 연구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교육청과 본인을 일심동체라 여기는지 스스로 교육청으로 빙의해 움직이려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호칭부터 둘 다 교육행정사로 바꾸어야 실제 그들이 하는 일과 어울린다.)
24년 11월 늘봄전담(지원) 실장직을 임기제 교육연구사로 뽑는다는 공고가 지역교육청에 뜨면서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각 학교에 늘봄실무사를 채용한데다 행정 업무를 보는 전담인력에 '행정사'도 아닌 '연구사'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늘봄전담 실장 때문에 생긴 공석을 신규 교사 채용으로 대신한다는데, 한 번 채용을 늘린 정규직 자리(인건비)는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은 하고 정책을 실시하는지, 늘봄실장은 영원히 지속되는 법적으로 규정된 직위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