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기능-정제된 감정의 미덕

날것의 감정을 정리해 작품의 형태로 표현한다.

by 바다반디

창작을 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철학을 가지고 창작에 임한다.

누군가는 공감을 위해, 또 누군가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역작을 남기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창작을 할 것이다.

이 중에 정답은 없다. 모든 창작 동기는 옳다. 그 동기나 과정이 도덕적 통념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나 역시 아마추어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작품관을 가지고 있다.

감정을 정제해 작품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


많은 이들이 꼽는 창작의 기능 중 하나가 감정의 분출이다. 사실 창작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지는 창작자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작품에 투사할 것이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체에 걸러 작품에 녹여내는 것을 선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두 성향 중 정답은 없으며, 다양한 성향이 어우려져 창작의 세계를 다채롭게 한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의미가 있다.


다만 나는 이 중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감정을 정제하는 창작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감정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


얼핏 보면 답닥해 보일 수 있겠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정리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연습이 되면 훨씬 효과적이다.


예컨데 지하철역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걸어서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 상황을 묘사할 때 전자의 경우 욕설과 그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 내지는 그 때 느꼈던 뭐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투사할 것이다.


나도 시도해 본 방법이지만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몰입하다 보니 또다른 부정적 감정이 몰려오고,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후자의 경우, 그 인간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과 욕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부정적 감정의 틀, 본질만 남는다


분노, 공포감, 억울함 등.


그 다음에는 정리된 감정을 토대로 창작하고 싶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재창조하는 작업을 거친다.


<예시>


(전자)

지하철 역사를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야, 뭘 쳐다봐 이 x끼야."

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시비를 걸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낮술을 마실 거면 곱게 x마실 것이지 왜 멀쩡히 걷고 있던 사람에게 시비야.

이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지만 요즘 세상 무섭다지 않은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자)

또람이에게


아깐 너무 무서웠어.

지하철역을 걷고 있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나한테 욕하는 거 있지?

무척 화가 나서 나서고 싶었지만 요즘 무서운 소식이 너무 많이 들려와서, 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위로받고 싶을 땐 항상 널 생각할게.

날씨가 추워지네. 감기 조심하고.


-바다반디-



동일한 상황을 표현한 글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생생한 현장감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느냐, 작품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렇듯 창작의 목표를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 상황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나의 경우 오랫동안 그림동화 작가를 목표했기 때문에 스타일 역시 여기에 맞춰졌다.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은 후 실제로 적용해 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작가의 색깔, 즉 고유의 표현방식이 형성될 것이다.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여러 공모전 참가를 통해 느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