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1

한 명의 독재자는 무기력한 다수에 의해 태어난다

by 미스터Bit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이해가 안 됨을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코 쌓아두는데,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압력을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직장을 20년 다니면서 단 한 해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또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 위기의 종류와 크기를 설명해주는 이는 없고, 그저 위기가 왔으니 더 가열차게 성능 좋은 직원이 되라 채근한다.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지만 말로 발설하는 순간, 착한 직원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적어지기에 참는 것이 미덕이라 암묵적으로 배워왔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인 일론머스크도, 생산 현장에서 모든 요구에 의문을 제기하라 하고, 심지어 본인의 요구도 예외 없다 주문처럼 소리치는데, 우리 사회에서 그랬다가는 상당히 외로워질 수 있다.


나이가 들어 나의 기본 이해 범위가 현저히 좁아지는 것을 충분히 감안하고 또 감안해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늘어난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언급하면, 회사의 강조 사항이 그중 하나다. 엄연히 연초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리소스를 투입해 만든 고도로 정교한 KPI(핵심 성과 지표), 즉 목표가 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회사 강조 사항이라며 집중해야 할 타겟을 빨간 펜으로 하이라이트해서 또 준다.


삶이 계획대로만 흐르는 건 아니니 그럴 수 있다 치며, 버겁지만 해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룹 강조 사항이라며 그 밑의 조직에서 다른 급한 목표가 또 떨어진다. 그러다 부서 강조 사항, 곧이어 본부 강조 사항까지 배달되어 온다. 위에서 하니 아래에서도 부랴부랴 계획의 계획을 또 낳으니, 그 모든걸 무기력하게 다 받아야만 하는 우리는 영혼이 삯는다.


원래 한시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월 정기 보고 사항이 되고 결국 매일 중점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주요 업무가 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현장을 지원하라고 있는 지원 부서들이 본인들의 일을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지원이 아니라 의욕을 지워내고 있는 결과가 생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이유가 3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 즉 리더들의 기본적인 역량이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다른 역량의 크기가 있는데, 가진 역량보다 큰 일이 요구될 때 일시적으로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일시적 오류이고 시간이 지나 적응되면 균형으로 회귀해서 해결된다. 운이 좋으면 이 과정에서 리더도 조직도 성장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향적으로 남 탓과 불만이 기본값인 경우다. 이 경우는 아무리 합리적인 요구라도 상대가 뒤틀리고 왜곡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귀결된다.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잘 아는 것처럼 주위에 이런 이유로 이해가 안 간다는 외침이 상당히 많다. 나 자신도 혹시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상당히 주의하는 편이다.


세 번째는 애초부터 잘못된 요구에 의한 이해 불가이다. 이것이 보통의 우리 직장인이 겪는 가장 큰 문제이고,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로 인해 많은 직원들이 원인도 모른 채 서서히 시들어 죽어간다. 시계열을 넓게 보면이런 문제를 겪는 회사들이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진행되기 때문에, 마치 타이타닉호가 서서히 침몰하며 승객들을 고요하게 바다밑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듯, 이런 조직안에 있는 사람들도 더 완전하고 공포스럽게 침몰한다. 대표적으로 노키아를 떠올리면 된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핏대 세워 쏘아대는 목소리가 있다면 사실 적당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대안 있는 비판이 무시되는 사회와 조직이라면 좀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몰이해가 기본값이 되는 것 같은 사회와 직장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제임스 알렌은 한 명의 독재자는 무기력한 다수에 의해 태어난다고 신랄하게 통찰했다. 조금 거친 표현이지만 곱씹어 볼 만한 얘기고, 역사적으로도 손쉽게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번영과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불안과 혼돈이 가중되면서 우리 스스로가 강한 한 사람에게 피지배 받기를 자처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오늘은 내가 입고 있는 현실의 옷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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