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하지 않는 일들이 많아질 때, 삶은 다채로운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따릉이를 타고 퇴근했다.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 30km를 정확히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달렸다. 시속 20km로 달린 셈이다. 작년 9월, 처음 따릉이 퇴근을 시도했을 때 2시간 이상 걸린 것을 감안하면, 체력도 다리 근육도 그간 조금은 성장했나 보다.
처음부터 따릉이 퇴근을 하려던 건 아닌데, 사무실을 나오자 퇴근길 저녁 공기가 포근하게 손깍지를 끼고 따릉이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여의도까지만 가야지 생각했는데, 페달 질에 흥이 나 고속터미널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고,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결국 집까지 왔다. 물에 빠진 소금 자루가 서서히 가벼워지듯, 나의 하루치 스트레스가 공기에서 녹아 달릴수록 무게가 덜어진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성질 급한 봄꽃들이 활짝 인사를 하며 시야 뒤로 걸어가 사라진다.
최근에 몇 가지 루틴을 추가했다. 이러다 진짜 루틴 부자가 되려나 보다. 하나는 새벽에 달리는 5km 슬로우 조깅이고, 다른 하나는 토요일 오전마다 아이들과 야외 활동하는 놀이들이다. 새벽 달리기는 외국에서 공무를 수행 중인 친구의 영향으로, 같은 곳에서는 아니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친구 따라 뛰게 되었다. 주말 10km 루틴도 닿기 어려운 목표였는데 어느새 평일 아침도 달리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
아이들과의 토요일 야외 놀이는 바빠진 아이들의 공부 스케줄에 쉼표 하나 찍어주고 싶어 한 나의 제안이다. 또 요즘 부쩍 싸우는 남매가 야외 놀이로 좀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심 있다. 우리는 벌써 3주간 배드민턴도 하고 야구도 하고, 지난주는 심지어 자전거로 성수대교까지 가서 한강 라면을 먹고 왔다. 아직은 좀 미숙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럽고 좋은 루틴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조금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웃는 것 같아 좋다.
새로 얻은 새벽 조깅으로 벌써 좋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잔다. 어지간하면 저녁 약속으로 늦게까지 밖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 4일은 꼬박 술과 담배에 절어 살던 시기에 비하면 개과천선 수준이다. 몸도 통장도 바닥까지 고갈시키며 왜 그리 살았나 싶다.
그리고 체력이 좋아졌다. 전에 비해 확실히 한 시간 반 페달 질이 힘들지 않다. 또 아침에 남보다 일찍 시작했다는 성공감이 있다. 아침이 경쾌해졌다. 하나만 더 언급하면, 출근길에 만나는 조깅족들이 부럽지 않다. 예전에는 일없이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일하러 가는 내가 조금은 측은해 감상에 젖곤 했는데, 이미 그 부러움을 채우고 온 몸이라 그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타인의 욕망을 덜 시기하게 되었다.
나는 루틴은 뭔가를 결심하지 않아도 하루를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하는 결심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는가? 미라클 모닝을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결심을 하고, 적당히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기 위해 맛있는 것을 덜 먹을 결심을 하고, 운동할 결심을 하고, 금연할 결심을 하고, 친절할 결심을 한다. 수많은 결심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뇌가 피로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 쉬고 싶어진다.
결심은 이제 그만하자. 근육덩이 형이 늘 강조하듯, 뭔가 꼭 생산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심 좀 안 하면 어떤가. 결심 대신 무심하게 그냥 하자.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이라면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어찌 골프뿐이겠는가. 모든 운동에서 불필요한 힘을 빼지 않고 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결심도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불필요한 힘이고, 적당히 빼야 그때야 비로소 쉽게 인생을 즐기게 된다고 믿는다. 루틴으로 만들어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익을 날이 반드시 온다.
나는 따릉이 퇴근도 월요일 루틴으로 시도해 보려고 한다. 결심하지 않고 기분이 혹은 발길이 이끄는 대로 해 볼 작정이다. 결심하지 않는 일들이 많아질 때, 삶은 다채로운 즐거움으로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