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
정말 오랫동안 15년 전 신혼에 살았던 동네에 갔다. 용산 끝자락, 경사도 있는 높은 언덕을 제법 오르면 길의 정상이 나오는데, 그 정상에서 한 번 더 꺾어져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신혼의 작은 아파트는, 앞에 있는 아파트 사이로 한 뼘 정도의 한강 실루엣이 겨우 보이는 '거의' 한강 뷰 아파트였다. 있는 돈, 없는 돈을 죄다 모아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전세 1억 5천만 원의 낡은 복도식 작은 아파트에서, 나와 아내는 시작할 때는 둘이었지만 그곳에서 이사를 나올 때는 딸아이와 셋이 되어 나왔다.
시세가 궁금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예상대로 4억 5천으로 껑충 뛰어올라 있었다. 그나마도 전세 물건이 전혀 없는 것을 보니 15년 전 우리 같은 부부가 더 많이 늘었나 보다. 당시 대리였던 나의 월급에 비해, 지금 대리들의 월급이 세배가 늘지 않았는데 전세 가격이 세배가 높아진 것을 보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단지 유머는 아닌 것 같다.
나보다 고소득인 아내 덕분에 우리는 벌이의 많은 금액을 적금으로 넣어 단기에 목돈을 만들었고, 2년 만에 좀 더 나은 아파트 전세로 이사해, 마침내 우리는 네 식구가 되었다. 아내는 언덕 위의 신혼집 다음의 집은 무조건 평지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내의 바람대로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단 한 뼘도 높지 않은 평지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의 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랐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이 부의 씨앗은 적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적금을 부어 언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겠냐며 현생은 쓰고 살겠다고 말하는 후배들에게 월급의 대부분을 적금에 넣는다면 적어도 집을 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적금은 금액이 아닌 부자 습관을 쌓는 가장 좋은 훈련이기 때문이다.
신혼집을 떠올리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얀마에서 만난 형제 같은 친구와 얘기하던 중 우리가 같은 시기에 그 아파트에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작 300세대가 안 되는 작은 아파트에 같이 살았던 이웃을 미얀마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쯤 될까? 더 기가 막힌 사실은 미얀마에서도 우리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고, 이제 복귀 예정인 그의 가족은 곧 우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확률을 AI로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대략 170만 분의 1이라는 결과값이 나왔다. 우리는 도대체 우주에서 어떤 특별한 인연이었던 걸까?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심오하고 신비하다.
아내가 몸이 아파지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서로 얘기할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요즘 부쩍 예전 사진을 들추며 이야기거리를 찾는 아내와, 우리가 지금까지 참 열심히 많은 것을 이루며 살았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물론 수십 년을 사신 분들에 비하면 아직도 시작 단계이지만,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는 일이 나름 의미 있고 재미가 있다.
우리의 현재를 설명하는 수많은 선택과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상승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꼽고 싶다. 우리 부부는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들을 꿈꾸고 닿기 위해 노력했다. 집만 하더라도 신혼집 이후 우리는 7번의 이사를 했다. 감히 쉬웠다고 말하기에는 설명하기 힘든 어려움이 많았고, 우린 약간의 운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아내는 동의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집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여전히 배가 고프다. 지나간 15년의 성공을 발판삼아 앞으로의 40년을 준비하는 중이다. 어느 성공한 이는 '세상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가슴에 새기고픈 통찰이다. 내 안에는, 세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지금도 조금씩 자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