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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아리코테지 Aug 15. 2019

•집 수리공의 일과•

노트북 대신 톱과 망치로 시작하는 하루

빈 시골집, 코테지 안의 실내 공기는 아직 찼다.


화장실의 변기도 겨울 동파로 인해 깨진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이용 불가한 상태였고 시골 구석진 곳이라 수돗물 대신 지하수를 사용해야 했는데 그 또한도 연결 문제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난 서울과 이곳을 오가며 집을 손보는 계획 대신 이곳에 머물며 집을 손보는 쪽을 택했다.

무식하게도 덜컥.

뭐 전화번호도 바꿨겠다 시골에 동떨어져 있는 나를 찾을 사람은 친한 친구 몇 명과 가족뿐이니 내 인생에 가장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불편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별로 중요치 않았다.


엄마는 곳 못 견디고 돌아올 거에 전재산을 건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쟁터에 가는 자식에게 굶지 말라고 챙기시는 마지막 음식을 전하듯 몇 가지 반찬을 담아 주셨다.


얼굴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스트레스성 피부염이 덕지덕지 남아있었고 건조한 입술은 생기 없이 갈라져 있는 내 몰골을 보며 말리지도 못하고 떠밀지도 못하는 마음 이셨을 것이다.

힘들면 어디 따뜻한 나라 여행이나 곱게 다녀올 것이지 시골 빈 집에는 왜 꾸역꾸역 기어 들어가냐는 잔소리를 뒤통수에 대고 하고 계셨지만 들은 채 만채 얼어 죽지 않을, 굶어 죽지 않을 간단한 살림살이를 챙겨 도망치듯 서울 집을 나와 운전대를 잡았다.

끝끝내 짐을 챙겨 나가는 내 모습에 가서 귀신이나 만나라는 덕담으로 마무리도 해 주신다.

물도 안 나오고 보일러도 고장 난 오로지 전기만 이용이 가능한 컨디션의 집에서 아무 신경 안 쓰이게 오롯이 집수리에만 몰두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속이 심플해졌다. 차량이 있으니 식재료는 장에 가서 사 오면 됐고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있어 원하면 따뜻한 요리도 해 먹을 수 있었다.

하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굶어 죽을 상상을 하나 싶어 참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 카드 한 장만 가지고 나가면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한 환경에서 살아온 자의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생활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상상이었지 싶다.



다행히 물은 가까운 할머니가 사셨던 집에서 꾸어다 사용하면 됐고 몸을 뉘일 간이식 침대와 전기장판, 전기난로가 있으니 한겨울의 추위가 아닌 이상 견딜만할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 댁에는 먼 친척 어르신이 기거하고 계셔서 간단한 부탁이야 드릴수 있는 입장이지만 그곳에 신세를 지고 싶지도 않았고 오롯하게 독립적인 시골 생활을 하고 싶어 여러 어르신의 걱정을 뒤로 한채 빈집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은 내가 들어오면서 빈집이라는 쓸쓸한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우선 잠을 잘 방을 정한 다음 난로와 간이침대 등을 가져다 놓고 노트에 집의 구조와 변신을 꽤 할 아이디어 등을 적거나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같은 시간대에 노트북 안으로 들어갈듯한 자세로 건조한 사무실에서 미간의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내 모습과 망치며 톱이며 페인트 등 집수리에 필요한 공구들을 정리하고 있는 현재의 내 모습을 보니 지금 비현실 세계에 와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그렇게 난 멀티플 한, 아니 멀티플 해야만 하는 집 수리공이 되어 앞치마를 질끈 매고 다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원하는 공간을 얻어 내려면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짧은 시간 내에 끝날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 생각하니 내가 과연 해낼 수 있는 영역인가를 여러 번 생각하게 됐지만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언제 또 올까 하는 생각으로 묵묵히 하나하나 집을 손보기로 마음먹었다.



우후죽순 벽이며 바닥이며 그냥 보통의 자재와 보통의 색들로 이루어진 내부를 하나하나 칠하기 시작하고 장판보다는 맨땅의 내부를 갖고 싶어 했던 나였는데 그걸 이 집을 통해 원 없이 바꿔 볼 계획을 하니 마음이 또 급해졌다. 가장 콤팩트하게 자재의 낭비 없이 집을 손본 후 폐기물도 최소화될 수 있도록 페인트 등의 재료 등은 부족하다시피 구매하다 보니 두 번 발걸음 해야 하는 시간 때문에 더 바쁜 날도 있었다.


거실과 모든 방의 장판을 걷어 뒷마당 창고에 잘 말아 보관하는 작업은 절대 혼자 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평일 아침과 낮시간에 날 도와줄 만한 친구나 지인들은 서울에서 열심히 그들의 삶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을. 간혹 친한 친구들이 믿기 어렵다는 듯 그곳에 왜 그렇게 오래 있냐는 둥 밥은 제대로 먹는 거냐는 둥의 걱정스러운 염려를 전하는 전화가 외부와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내 키만 한 길이의 장판들을 하루에 한 롤씩 말아서 걷어내니 장판을 깔기 전 공사 때 냥이 녀석들이 다녀갔던 발자국이 거실을 거쳐 방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시멘트가 마르기 전 녀석들이 집안을 들락 거린 듯했다.

장판을 걷어내지 않았다면 이런 귀여운 발자국이 발견되지 않았겠지란 생각을 하니 장판을 걷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고 냥이 녀석들의 흔적은 볼 때마다 웃음 지을 수 있게 그 자리에 그냥 두기로 했다.


혼자 하는 집수리다 보니 어떤 날은 페인트 작업자였고 어떤 날은 전기 기술자였고 또 어떤 날은 목수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고된 날의 연속이었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변해 가는 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 작업은 감동적인 작업이었다.



이렇게 혼자 작업을 하는 가장 큰 장점은 마음에 안 들 때 바로바로 다른 것으로 대체해보거나 아쉬운 말 하지 않고도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뭐. 상상을 초월한 힘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


하루는 뭉친 어깨를 만지작 거리며 전기장판으로 미리 데워놓은 침대에 몸을 뉘이고 깊이 잠이 든 날이 있었는데 뒷마당 쪽에서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려온 몸의 신경이 곤두 서고 너무 놀라 불을 켜지도 못하고 경찰에 신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까지 식은땀 범벅이 되어 해가 뜨고 나서 동네 어르신을 통해 알았다.

생애 처음 들어본 고라니 울음소리였다.

 

아직도 그날 밤의 놀란 기억이 생생 하여 귀여운 생김새의 고라니를 봐도 무섭다.


아침이면 전기 주전자로 온수를 만들어 세안과 양치를 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식수를 아껴 마시는 근검절약의

일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집을 고치는 시간과 동시에 결핍을 경험한 나는 굳이 애써 대형 마트까지 차를 몰고 가서 불편함을 해소하려

하거나 결핍된 상황을 풍요로 충족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풍요를 누리고 살았고 풍요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챗바퀴의 염증에서 튕겨져 나왔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현재의 결핍은 원인과 결과 같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서울의 편리한 시스템에 있지 않으니 불편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고 수리가 필요한 집에 완벽하지 않은 생활환경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발로 걸어 들어온 이 상황을 힘들어하는 건 어쩌면 모순이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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