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긴 통화에서 일부러
나의 아픔을 꺼내 이야기를 했다.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잘 살아야만 하는 상황인데.
어렴풋이 어딘가에서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외면하고
해야 할 일에 뒤처지지 않게
따라가기에 바빴는데.
제 자리에 멈춰 서서
그곳에 서있기조차
버거워하는 친구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누구나 조금은 다 아프다고.
너는 잠시 거기에 더 오래 머물고 있을 뿐이라며
별일 아닌 것처럼 위로하기 위해.
나의 아픔을 선뜻 작은 거라도
내 입에서 꺼내 놓으니
정리가 필요한 일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의 좋은 점, 잘한 일보다는
부족한 점, 아쉬운 점,
그래서 바라는 점이 먼저 보이는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머릿속이 바쁘다.
잘하면 잘할수록 보완해야 하는 점들이
눈에 명확히 보이기 시작하니
열심히 살수록 어느 순간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부모님과 외출 후
차 뒤에 두 분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
기분 좋게 취하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요즘 시골 생활을 하며 걱정이 생겼는데,
바로 닭이 알을 낳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한다.
일흔이 되신 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며
‘그래 지금 우리 나이에 진짜 걱정은 이런 게 아니겠냐고.
아파트 집값이 왜 안 오르는지가 아니라
닭이 알을 낳지 않는 것,
대나무 뿌리가 너무 깊숙이 자라는 것이
고민이어야 하지 않겠냐’며
본인의 고민을 내려놓고 싶으신 듯
실없이 웃으신다.
꼭 정해진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조금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은 바람,
조금 더 내 시간을 갖고 싶은 바람,
바람을 가장한 나의 욕심 안에 숨겨진
비교 대상을 ‘나’로 바꾸면 어떨까.
지금의 나도 물론 좋고.
이 만족 위에서 하고 싶은 일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실패했어도 좌절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놀이를 했다는 마음으로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눈을 뜨면
새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기.
지금의 나에게 감사하기.
나의 모든 것에 긍정하기가 먼저일 듯하다.
오늘부터 시작해 봐야지.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주인공이
자기 긍정을 위해 시작한 ‘칭찬 일기’를 시작해 보았다.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 점>
편히 잠들 수 있는 집이 있고,
외롭지 않게 항상 곁에 있어주는 남편이 있고
직장을 잠시 떠나와 나를 알아가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건강히 살아 계시고
너무나 잘 살아가고 있는 친오빠 부부와 조카가 있다.
<오늘 내가 잘한 일>
차 수리를 처음 맡겨봄.
도서관에 나와 생각을 정리함.
난임 센터에서 진료를 받으며 아이 준비를 함.
남편 저녁 준비
칭찬 노트 사기
친구를 위로해 줌.
실비 보험 청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