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렇게 멋진 곳에 가서 전문가처럼 사진도 찍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올리고 싶어."
열여덟 살 무렵,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늦은 밤, 자습이나 일찍 잠들기보다는 즐겨찾기로 아카이빙 해둔 파워 블로거들의 그간 올라온 새 글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롭던 시기였다.
아마 그 얘기를 했던 것은 어느 맛집 전문 블로거의 글을 보면서였던 것 같다.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유명 식당에 방문해서, 그대로 출력해 광고물로 써도 손색없을 정도로 퀄리티 높은 사진을 찍고, 심지어 맛에 대한 논평도 끊임없이 술술 써 내려간 맛집 포스팅 말이다.
지금은 누구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 블로그에서는 수없이 많은 음식점에 대한 리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의 생각으론 '아마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음식점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먹는 행위를 좋아해서 여기저기 먹으러 다닌 곳들을 남겨놓은 방문기가 아니었다. 빠져들 듯한 필력으로 음식의 맛과 특징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고, 꽤나 조목조목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했다. 그것이 비록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일지라도 그가 보여준 전문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신봉에 가까운 신뢰감을 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남들의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최근의 먹방 콘텐츠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먹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었다. 요즘 10대 학생들이 '뼈 마른' 몸매를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유명인이나 공인도 아닌, 그저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한 사람의 온라인 공간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니,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블로그의 최신 글들을 모조리 읽고 언제 또 새 글이 올라오나 기다리다가, 나만의 파워 블로거들을 하나하나 새로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블로그 세계 탐닉은 시작되었다.
우리 엄마도 요리 블로그 하면 좋겠다!
나의 블로그 세계관이 맛집 블로거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해서, 항상 퀄리티 높은 사진 일색인 유명 레스토랑 리뷰만 찾아본 건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포털 사이트 메인을 둘러보다가, 왠지 눈길을 끄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집에서 흔하디흔하게 먹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 반찬 레시피였다. 처음에는 '이런 메뉴도 블로그에 올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블로그의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왠지 모르게 더 보고 싶어졌다. 블로그를 즐겨찾기 하고, 그렇게 또 하나의 블로그에 깊이 빠져들었다.
열여덟 살짜리 여학생이 요리 블로그를 본다고 해서 그 음식을 따라 만들어볼 리는 당연히 만무하다. 레시피를 보았다기보다는 그저 그 글에 담긴 소박하고 친숙한, 어쩌면 조금 촌스러운 느낌의 글과 사진을 감상하는 것에 가까웠다. 왜일까, 그 블로그를 보면 자꾸 '우리 엄마도 이렇게 요리 블로그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주부 9단 아줌마가 집에서 평상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인터넷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레시피'라는 정보를 나눈다... 이것 또한 내게 큰 울림이었다.
블로그를 즐겨찾기 하고, 꼬박꼬박 새 글을 받아보면서 점차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딘가 조금 어색한 구도에 그림자 져 있던 사진은 점차 또렷하고 맑아졌다. 평범한 집 반찬 위주였던 메뉴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채롭고 화려해져 갔다. (물론 요리에 서툰 이들을 위한 기본 집 반찬 레시피도 다양한 버전으로 종종 올려주었다.) 하지만 특유의 구수한 멘트는 변함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후 몇 년 간의 시간이 흘러 갑자기 그 블로거의 근황이 궁금해, 기억을 더듬어 찾아본 적이 있다. 반갑게도 그 사이 블로그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더 커진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간 블로그에 작성해 온 수많은 레시피를 엮어 책으로 발간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전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주부의 그야말로 화려한 변신이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블로거가 될 수 있을까?
이후에도 한참이나 블로그 세계에 대한 탐닉은 계속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정보를 찾다가 발견한 파워 블로거. DIY, 인테리어, 웹툰 등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능한, 그야말로 파워 금손을 가진 블로거였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만의 아픈 이야기가 있었고 거기에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갔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화장하는 방법에 관심이 생겨, 어느 뷰티 블로그를 즐겨 보았다. 뷰티 블로거인 만큼 얼굴이 무척 예뻤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투잡으로 쇼핑몰도 운영하고, 글에서는 따뜻한 감성과 깊은 지성까지 느껴졌다. 미모, 능력, 지식. 어느 한 군데 모자람 없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그렇게 한없이 넓은 블로그 세계에서 내 마음에 딱 꽂히는 블로그를 발견하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찾은 것처럼 귀하고 소중했다. 안부를 묻듯 새 글을 살피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진실로 그분들의 안녕을 바랐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그 옛날 내가 구독하던, 내 마음속 파워 블로거들을 찾아 들어가 보곤 한다.
블로그라는 세상을 처음 접했던 열여덟 살의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 나 또한 한 명의 블로거가 되었다. 물론 내가 즐겨 구독하던 분들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일개 평범한 블로거일지라도.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기억되는 블로거가 될 수 있을까?
사실은 아직 자신 없다. 적어도 꾸준함은 갖추어야 하는데, 나는 벌써 세 번이나 아이디를 바꾸었지 않은가. 게다가 요즘은 아주 간간히 홍보성 게시글만 올리고 있다.그래도 지금까지 아주 미약하게나마 끈을 이어가고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존재가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