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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 Aug 01. 2024

알코올 중독에 관한 단상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는 단순히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니다. 내가 나 의 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서두가 끝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진정한 알코올 중독'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곤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그렇게 안 생겼는데?"


알코올 중독자처럼 생긴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대부분의 중독이 그러하듯 그리고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음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꽤 오래 했던 것 같다. 


'내가 중독이라고? 아니야. 단지 나는 술을 아주아주 좋아할 뿐이야. 그리고 술을 잘 마실 뿐이야'라고 말이다.


1년 반의 휴학을 끝내고 대학에 복학하던 어느 해 가을, 나의 알코올 의존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끔찍했다. 그래서 술을 스스로를 위한 회유책으로 선택했다. 반 걸음씩 움직여가며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나면, 집 앞 편의점에 들러서 알코올 음료수 한 캔을, 큰 사이즈의 얼음컵과 구매한다. 그 뒤 얼음컵에 술을 옮겨 담는다. 그렇게 첫 한 모금을 마시면 밖을 나서는 일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무사히 하루를 마친 나를 위해 서 또 한 병의 술을 선물했다. 평소 애주가였던 나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술을 마시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는 것이 수월해진다.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 위해 마시고, 해야 할 일을 끝마쳤으니 마셨다. 술기운이 돌면, 어떤 일이라도 성공할 자신감과 실패할 용기가 생겨난다.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나 기억들은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그런 감각에 익숙해지고 나면, 맨 정신으로는 그 무엇도 견뎌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몰래 한 병 사 온 술을,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즐겁게 아껴 마시던 내가, 하루가 시작되자마자, 정말 술을 그만 먹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또 외치며, 자기 연민과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무력하게 편의점을 향하게 되기까지 약 3년 정도가 걸렸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마시길래 중독이라 하느냐고 궁금해하곤 한다. 나는 취해 있는 것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마시는지를 의식한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잘 모른다. 같은 한 병이어도, 하루종일 나누어 마실 때도 있었고, 가족들의 감시를 피해 단숨에 마실 때도 있었다. 마시는 양 자체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거의 항상 취해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에, 얼마나 마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규칙적으로 마신다는 것이 중요하 다는 설명으로 답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조금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곤 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놀랄만한 수치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쪽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겠지. 그럴 때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다지 놀랄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거의 항상 마시고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적게 마신 날은 하루에 두 세 병 정도를 마시고, 많이 마신 날은 여섯, 일곱 병 정도 마신 날도 있는 것 같아요. 더 마신 날도 있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특히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술을 마시는 것으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중독자의 술에 대한 갈증은 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시면 마실수록 갈 증은 더 커져간다. 술이 맛있다거나, 술을 마셔서 기분 이 좋아진다는 느낌도 처음뿐이다. 단지 숨을 쉬기 위 해,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호흡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집어 들고야 마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질식할 것 같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알코올 중독자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라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어떤 것도 견딜만해지는 감각이 문제다. 그 감각에 익숙해지면 술 없이는 어떤 것도 견디기 힘들어진다. 한 잔의 술을 마실 수 있기에 한 순간을 버텨낼 수 있던 것이, 한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한 잔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마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엔 이미 늦었다. 술을 마시기 싫다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저주 걸린 빨간 구두를 신기라도 한 듯, 술을 사러 나가는 발을 멈출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중독자가 메우려고 애쓰는 것은 자기 구조 안의 결핍이다. 그리고 그 구조적인 결핍은 다른 어떤 형태의 중독들과 마찬가지로 구강기적 섭취로 메워지지 않는다. (중략) 중독적인 먹기와 음주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자기의 회복, 하인즈 코헛


중독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와 때로는 전문 시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던 당시, 담당 교수님께서는 중독을 단어의 자동 완성 기능에 빗대어 설명해 주셨다. 자주 입력한 단어는 가장 상단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ㅅ'만 입력해도 술이라는 단어가 완성되는 지금 의 상태에서, '술'이라는 완벽한 단어를 입력해도 자동 완성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될 때까지는, 최소 반년 동안, 절대 금주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3년 동안 술에 취해 있었고, 입원 치료 이후, 약 반 년 동안 금주했다. 그렇게 끝났다면 꽤 보기 좋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독엔 완치가 없다. 반년 이후, 조금씩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또 자주 취해있던

1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반년을 금주했다. 지금에서 야 나는 중독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어떻게 벗어났냐 고? 술을 마셔도 취한 기분이 들지 않고, 곧바로 온갖 숙취로 몸져눕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술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취 특유의 메스꺼움이 느껴진다. 나의 중독이 삶이 아니라 동화였다면, 중독에서 벗어난 지금의 내 앞에 행복한 매일이 펼쳐져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Mar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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