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청소해 보자. 디지몬 어드벤처 ost <Butterfly>
나는 하기 싫은 게 생기면 바로 유튜브부터 키는 버릇이 있다.
한 번 켜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흐른 뒤에 미뤄둔 일을 시작하지만 고치기 힘든 버릇 중 하나였다.
유튜브를 틀면 대개 영화 리뷰나 카페 asmr 영상을 틀어놓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예전에 본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거나 노래 플리를 틀은 채 공부를 하긴 했다.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패드를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결국 문제집을 덮었지만 몇 문제는 풀었으니 됐다며 패드에 집중한 적도 많았다.
딴짓하기는 뭐든 재밌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영화나 애니메이션 리뷰였다. 120분짜리 영화는 알짜배기 장면만 모인 20분짜리 영상이 되었으니 편하게 침대에 누워 보는 게 제일 좋은 일탈이었다.
내가 모르는 영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애니메이션은 익숙한 것들이 많았다. 이름을 들어보거나 어릴 때 본 것들, 오프닝/엔딩이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있었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내가 어릴 때 봤던 애니메이션이었다. 항상 재방송만 봐서 제대로 감상한 적은 없지만 어느 내용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애니메이션이었다.
재방만 보고 제대로 찾아본 적 없는 애니메이션 가사가 너무도 어른을 위한 노래였다.
어린아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의 노래 가사는 너무도 심오했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그래도 날아오를 거야
작은 날갯짓에 꿈을 담아
조금만 기다려봐 oh my love
이런 가사를 애니메이션 오프닝 노래로 삼을 생각을 한 사람이 어딨을까.
누군지 몰라도 어린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던, 또는 날개를 갖고 싶었던 어른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왜 이런 가사의 노래를 오프닝으로 삼았는지 의문이 생겨 찾아보니,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글에는 이런 답변이 달려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된 그 시절의 아이들이 힘들 때, 추억하며 위로받으라고 그런 노래를 선정했다
라는 답변이 말이다.
그 애니메이션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저런 다정함을 품은걸까.
우리가 되돌아올 장소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도 되돌아오고 추억할 장소가 필요해서일까.
나한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날아갈 곳이 어딘지 모르지만 언젠가 날아갈 나를 위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 달아준 날개를 말이다.
거미줄이 쳐지긴 했지만 여전히 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아차렸다.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만든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은 이어폰을 낄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처음으로 침대에서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익숙한데 낯선 노래를 들으며 문제집을 풀었다.
이제는 익숙하기만 한 노래를 들으며 중얼거려본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