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시 비프 부르기뇽을 만들 것이다. 영화 <줄리&줄리아>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매일 아침 6시 반에 눈을 떴다.
새벽까지 공부한 날엔 오후 1시에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전부였다.
잠들기 전, 울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던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줄리&줄리아>라는 영화 리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처음 봤을 땐 단조롭고 자극적이지 않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영화 속 인물이란 이유만으로 나와는 먼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는 진학할 학과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이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끌리는 학과는 타 지역에 있었고, 성적도 턱없이 부족했다.
도전해 봤자 안 될 게 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안정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생님께 말하고, 조용히 교실로 돌아왔다.
그날은 담임선생님과 대학상담이 잡혀 있어서 교실 분위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이름이 아직 불리지 않은 친구들은 시계와 교실 문을 번갈아보며 긴장했고, 이미 상담을 마친 아이들은 펜을 쥔 채 멍하니 문제집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공부에 집중해보려 아이패드를 꺼냈다. 평소처럼 유튜브를 켰는데,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스크롤을 내리다 <줄리&줄리아> 리뷰 영상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지금은 집중도 안 되는데 잠깐 쉬자.’
가벼운 마음으로 영상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주인공들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줄리아는 날 때부터 요리사였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 줄리가 블로그 글쓰기를 망설일 때, 남편이 무심히 던진 말이었다.
줄리아 차일드도 처음부터 요리사였던 건 아니다. 오리 뼈 가르는 법도 몰랐던 그녀가 왜 유명한 요리사가 되었는지,
그녀를 동경하는 줄리의 이야기가 왜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 날도 6시 반에 일어나야 했고, 외워야 할 영어 단어 숙제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 영화를 결제했다.
야자 시간에 조용히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줄리&줄리아>는 정말 자극 없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감동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의 리듬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를 동경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줄리, 칼 쥐는 법도 모른 채 요리학교에 등록한 줄리아.
그들은 나처럼 평범했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여러 이유를 붙이며 시도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결국 ‘해봤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노력하면 도전할 수 있는 대학을, ‘지금은 너무 힘드니까’라는 이유로 미리 포기했다.
사실은 그냥 힘든 게 싫었던 것이다. 핑계를 댔을 뿐이다.
물론 영화는 실화를 각색한 창작물이고, 감동을 극대화하려고 덧붙인 장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줄리 파웰은 결국 책을 냈고, 영화의 원작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8년 동안 무시당하고, 칼 쥐는 법도 모르던 줄리아 차일드는 비프 부르기뇽 레시피 하나로 편집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 시작될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이 떠오를 즈음, 야자가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짐을 챙겨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곧장 침대에 눕지 않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안 해도 되는 일’, ‘해야 하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을 적어보았다.
무엇을 적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 하나만큼은 아직도 기억난다.
다음 날, 나는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원서 넣어보고 싶어요.”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셨는지 몇 번 회유하려 하셨지만, 결국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면 정말 완벽한 영화 같은 결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대학에 떨어졌고, 지금은 본가에서 가까운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줄리가 비프 부르기뇽을 만들다 잠들어버린 것처럼, 나의 비프 부르기뇽도 완전히 타버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다시 만들고 있다.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가 입에 안 맞아 따로 소금 간을 했던 줄리의 남편처럼, 이제는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대사를 인용해보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과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