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냄새나는 침대에서 울기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아득한 어린 시절이 있다. 영화 <오세암>

by 네모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영화가 있다. 영화가 슬픈 것도 이유지만 눈물이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 이해 없이 이 영화를 보던 어릴 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세암을 집에서 본 기억은 없다. 매번 아빠의 기름 냄새나는 코란도 뒷좌석에서 보던 기억뿐이다. 뒷좌석에 앉기 위해선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젖히고 타야 했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나와 오빠를 데리고 자주 국내여행을 다니셨고, 편안하고 조용한 여행을 보내기 위해 출발하자마자 영화를 틀어주시곤 했다.


영화라 해봤자 어린 우리를 위한 애니메이션 CD가 대부분이었다. 상, 하편으로 나뉜 CD를 고를 때에도 우리는 자주 싸웠다. 지난번에 본 영화를 이어 보자 말하면 다른 한 명은 새로운 걸 보자고 말했다. 부모님은 티격태격 대는 우리에게서 CD를 뺐어 아무거나 재생시키셨다. 불만을 가져도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화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자주 본 영화는 오세암이었다. 사고 치는 길손이와 길손이의 장난에 골머리를 앓는 스님들의 모습은 나와 오빠를 닮아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길손이가 곤히 자고 있으면 꼭 엄마가 훌쩍이셨다. 잘 자는 길손이가 뭐가 슬픈 건지 난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길손이는 잠든 게 아니라 죽은 것을, 그래서 엄마가 울고 감이가 슬프게 울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학생이 된 후 과제를 해야 하는데 어쩐지 오세암이 생각났고, 오랜만에 영화를 시청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눈물이 났었다. 내용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어떻게 이야기가 끝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인지 알기 때문이다.
흐릿하지만 기억나는 장면들을 보는 동안 내내 울었고, 다 보고 나면 우울해질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오히려 마음이 잔잔해졌다.

영화를 보고 나니 오히려 흩어진 생각과 감정이 제대로 된 틀에 붙잡힌 느낌이었다.


어릴 땐 "어리니까 모를 수 있지"라는 방어권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서는 그 방어권이 사라졌다는 걸 우리 모두 안다. 이제는 뭔가를 몰라도 "그럴 수 있지"라는 여유보다는 "왜 몰랐어?", "왜 못했어?"라는 압박이 따라붙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정말 가끔,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렸을 땐 슬픈 장면도 왜 슬픈지 몰랐고, 그냥 지나가는 감정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은 그 감정을 너무도 정확히 알아버린 내가, 오히려 더 슬퍼진다.

오세암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지만, 쉽게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시절을 너무도 그리워하게 될까 봐. 혹은 영화를 보면서 울고 있는 내가 너무 약하게 느껴질까 봐.

하지만 나는 안다, 깨달았다. 그 울음이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나를 붙드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어릴 땐 몰랐던 장면에서 울고, 어릴 땐 웃었던 장면에서 아파하고,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 이야기를 진짜로 '이해'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게 성장이라는 것을 그리워하고 울고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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