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한 일정 정리하기
'발등에 불 떨어지다' 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일이 몹시 절박하게 닥치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대개 일이 너무 많고, 마감기한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발등에 불 떨어지다' 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니 열심히 과제나 미뤄둔 일을 해야하지만, 생각보다 여전히 유유자적한 상태로 쉬고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다.
과제를 끝내고 논문을 읽어야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유튜브만 본 사람. 10시에 시작하자면서 17분 넘긴 게 마음에 안 든다면서 11시에 시작하자며 다른 ott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후엔 졸리면 집중이 안되니 다음날에 시작하자며 잠드는 사람.
하루 더 다가온 마감기한과 함께 쌓여버린 과제 더미를 보면서도 또 무시한다. 어제의 나를 원망하고 때려보려해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를 즐기고 싶다며, 더러운 책상에서 과제하기 싫다며 책상을 청소하고 간식거리를 챙겨오면 비로소 발등에 떨어진 불의 크기를 체감한다.
그러나 체감만 할 뿐 실감나지 않은 크기에 또 무시하려 든다. 불씨를 없애거나 물을 가져오는 등의 비유처럼, 과제를 시작하고 끝내야하는데 뭘 먼저 해야하는지, 금방 끝낼 수 있는지 알기 힘들어 시간만 보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뭐라도 하는 척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메모지를 꺼냈고, 듣고 있는 강의명을 쓰고 그 아래에 해야하는 과제를 작성한 후 과제 옆에 마감일을 적어보았다.
써내려가면서 어째선지 뒤죽박죽이던 생각이 정리되면서 한결 편안해졌고, 가장 먼저 해치워야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알게 되자마자 곧장 해치워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켰다.
책상에 아무렇지 않게 두면 또 버릴 것이 분명해 잘 보이는 노트북의 빈 공간에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전보다 확실한 방향이 눈에 확 들어오니 전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과제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 못하고 마감기한에 닥쳐서야 후다닥 끝낼 줄 알았는데, 여유롭게 과제를 끝내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바로 다음 과제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마감까지 한참 남았지만 차근히 준비해야하는 개인 발표 때문이었다. 작품에 맞게 논문을 찾아두긴 했지만 읽어도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어 마음만 더 급해졌다.
아까 과제를 끝냈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되겠지 라며 다시 딴길로 새 휴식을 취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놀면서도 또 어떤 논문을 찾아야하고 그 다음엔 어떻게 발표를 할지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별 성과없는 휴식시간을 가지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아까 붙여둔 메모지가 보였고, 일정을 적은 것처럼 내 과제를 하나하나 분리해놓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발표 준비하기'가 아닌 준비 과정을 세세히 적어보기로 했다. 먼저 논문을 다시 찾아야하는데, 주제를 확립하지 못했으니 새로 주제를 정하는 것과, 관련 논문을 찾아 읽으며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기로 했다.
'발표 준비하기'로 일정을 일관했다면 분명 몇날며칠이고 미완료 상태로 마음 졸이게 했을텐데, 세세하게 단계별로 나눠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어느 상태에 머물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세부사항이 늘었지만 막연하지 않아서 부담이 줄어들었고 그제서야 다시 과제를 할 마음이 들었다. 하나하나 과제를 끝내니 성취감이 생겨 곧장 다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막막하고 잘 안 풀려 답답하긴 해도 그전처럼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았다. 어설프긴해도 도미노처럼 하나의 실행이 다음 단계로 무리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과제를 끝내고 노트북에 붙여둔 메모지를 확인했다. 여러 수정을 거치고 완료했다는 밑줄을 친 메모지를 보니 내 불안과 초조함이 정리된 이유를 알았다.
막연하게 과제를 끝내고 완성해야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었다. 정리되지 않은 일에 비롯된 막연한 불안감은 일정을 정리하며 사라져서 전보다 더 수월하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일정을 새로이 정리한다고 해서 과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과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은 유의미한 변화라 생각한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는 것이 대견하고 뿌듯했다.
여전히 할 일을 미루거나 막막함에 힘들어도 전보다 힘들진 않는다. 처음에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도 나를 위한 불안감이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불안해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씩 일을 처리하는 것이 더 도움 되는 것처럼, 조금씩이라도 나를 위한 습관이 잡히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뒤늦게 깨달았다고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제대로 활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