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지갑 다이어트 방법

꼼꼼한 소비, 투자라고 생각해 보자

by 네모

가끔은 내가 새드엔딩 영화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은 날이 있다.


밤을 새워 쓴 리포트가 저장되지 않은 채 날아가 버리거나, 오래 기대하던 일정이 당일 취소되는 날. 그런 순간, 마음은 금세 음울해진다.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온몸이 스트레스에 잠식되는 기분이다.


그럴 땐 마치 뇌가 잠시 꺼져버린 사람처럼 소비에 기대게 된다. 평소라면 편의점의 1,500원짜리 라테 한 잔이면 충분했을 텐데, 그런 날에는 굳이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러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주문한다. 그마저도 모자라 ‘오늘은 특별하니까’라는 핑계로 사이드를 추가한 햄버거 세트까지 해치운다.


감자튀김을 몇 조각 남기고서도, 우울하다는 이유로 라테를 천천히 들이켜면 기분은 조금 나아진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느끼는 포만감이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과식으로 뒤틀리는 속이 신호를 보내오고, 그때부터 후회가 밀려온다.


지출 내역을 확인하려고 은행 앱을 켜는 순간, 후회는 더욱 또렷해진다. 방금까지 나를 위로하던 포만감과 차가운 음료가 되레 나를 짓누르는 느낌. 이미 소비는 끝났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참을 걸’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우울함은 조금이나마 사라졌기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괜히 샀던 물건들, 즉흥적으로 지른 소비도 비슷한 후회를 남긴다. 술기운에 들렀던 인형 뽑기 가게에서 만 원을 쓰고 돌아온 적이 있었고, 큰 세일 중이라는 말에 혹해 충동적으로 비싼 물건을 산 적도 있었다.


물건이 도착했을 때의 짧은 설렘도 잠시, 곧 ‘내가 왜 이걸 샀지?’ 하는 의문이 따라온다. ‘나를 위한 소비’였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 그 순간, “이건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지출이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면, 이미 실패한 소비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소비가 반복될수록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고 되레 쌓인다. 그리고 또다시 해소를 위해 소비를 택하게 되고, 결국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어느 순간,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은 다르기에, 취향에 맞춘 소비는 보다 직접적인 위안을 준다. 하지만 그조차도 반복되면 금세 익숙해지고, 때로는 지루해진다. 그렇게 나는 소비에 대해 또 한 번 방향을 틀게 된다.


이번에는 ‘도전하고 싶었던 것’에 돈을 써보기로 했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진심으로 원했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면, 후회가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비의 즐거움과 성취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지출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소장하고 싶어 직접 구매해 밑줄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적어본다든가. 시간이 남은 평일 오전, 혼자 조조 영화를 보러 가는 일. 오래전부터 눈여겨봤던 카페를 방문하는 일도 그렇다.


물론 이 역시 돈이 드는 일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소비보다 더 큰 만족감을 안겨준다. 물론 모든 도전이 성공적이진 않았다. 기대만큼의 감동이 없었던 날도 있었고, 낭비였다고 느껴진 날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투자라고 해서 마냥 괜찮은 건 아니다. 지나치면 또 예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은 과감히 지우고, 정말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에만 집중하는 것.


최근 내게 그런 도전 중 하나는 손톱 케어였다. 고민이 생기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고, 원래도 손톱이 얇아 기르기 어려웠기에 늘 신경이 쓰였다. 큰맘 먹고 손톱 관리 제품들을 검색하고, 비교하고, 신중히 골라 구매했다.


기왕 시작한 김에 정확한 사용법도 익혔다. 큐티클을 정리하고, 네일 강화제를 바른 손톱은 아직 뚜렷한 변화는 없지만, 스스로를 돌봤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성취감을 안겨줬다. 물론 귀찮아서 건너뛴 날도 있었지만, 꾸준함과 반복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고 말았다면 아마 몇 번 쓰지 않고 방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했을 뿐인데, 결과는 전혀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가끔은 옳지 못한 소비를 하고, 또 실패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실패마저도 배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실패를 해봐야 성장할 수 있으니까. 맞는 방법을 모르는 만큼 건강하고, 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며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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