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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Aug 09. 2024

우리나라 최초의 심야영화는 유리창이 깨질정도로 만석!

<영화 애마부인, 1982년>


 80년대 독재 정권은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불만의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정권 유지 차원에서 펼치는 우민화 정책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프로야구가 신설되었고

통금 해제로 유흥업소는 호황을 누렸다.

프로야구는 영호남 대결구도를 만들어

정치에 이용했다.

처음엔 불순한 의도가 있었지만

프로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성장해

현재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고 있다.

LG트윈스 팬인 나도 가끔

잠실운동장에서 직관하기도 한다.

토론토의 블루제이스 홈구장에 가서

미국프로야구 경기를 직관했는데

운동장 분위기나 응원은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잘했다.

이 시절 또 하나의 변화는

통금해제로 유흥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2시 통금에 몰려 귀가를 서둘렀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술집에서 유흥을 즐겼던 것이다.

특히 이때 많이 생긴 룸살롱은 이후 우리나라

비즈니스 접대 문화에 큰 폐해를 가져왔다.

술값도 만만치 않은데

인기 있는 룸살롱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을 정도였다.

당시 접대 문화로 호황을 이뤘다.

그 영향은 극장가에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금이라도 야한 상면이 나오면

심의실에서 모두 가위질을 해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거의 원본 그대로 상영되었을 정도다.

가위질이 축소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야동같은 화면들이

대형 화면에서 꿈틀거렸다.

또한 심야극장 상영이 허락되면서

관중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첫 수혜는 정인엽감독의 '애마부인'이 누렸다.

1982년 2월 6일 종로 3가의

'서울극장'은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최초로 심야 상영을 한 이영화는

4개월간 31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 1000만 관중시대라 상상하기 그렇겠지만

당시의 관객수는 가히 폭발적인 숫자였다.

이 작품은 이런 흥행 성공으로

후속 시리즈가 12편이나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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