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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Nov 14. 2024

우리 시대의 독보적 원탑 미남
알랭들롱 사망

 그는 세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물론 그의 곁에는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한 반려견 ‘루보’도

친구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안락사로 추정된다.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의식도 희미해져가고 있으면서

그의 영화 같은 삶을 마감한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너무나 예뻐서

사람들이 너무나 만져서

어머니가 외출할 때는

유모차에 ‘만지지 마세요’라는 푯말을 붙일 정도였다.

그의 외모는 이미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

그는 4살 때

부모가 이혼해서 불후한 어린시절을 살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학교에서 적응을 못했다.

6번이나 퇴학 처분을 받았을 정도였다.

주변에서는 그런 그를

인물 값, 얼굴 값 한다고 수근거렸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

‘칸’에 우연히 놀러 갔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자의 눈에 띄어

영화판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 같은 영화를 만나게 된다.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로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친구를 죽이고 바다에 시신을 유기하며

부잣집 아들 역할을 하다가

결국은 그의 행적이 들통나게 된다.

필립의 보트가 육지로 끌어올라 오는 순간

선미에 줄이 얽혀 매달려 있던 필립의 시체가

떠오른 것이다.

영화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역할이

실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는 이 영화 하나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 영화를 보고 평단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라고 칭송했다.

그는 영화 하나로

1960년대 프랑스 영화를 이끌었고

이런 그의 업적으로

1991년에는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의 팬들에게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는

스토리나 연출을 논하기 전에

오직 알랑 들롱의 세계 무대 데뷰였다.

기념비적으로 잘 생긴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잘 생긴 남자에게

‘신성일’이라는 애칭을 붙이듯이

세계 시장에서는

잘 생긴 남자에게

그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붙였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4살에 이혼한 부모들 때문에

불후한 어린시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시절 배가 고파

레스토랑 앞에서 넋을 잃고 있으면

주인이 나와 밥을 주었다.

그의 범상치 않은 얼굴이

그런 자비를 베풀 수밖에 없게 했다.

또 옷 가계 앞에서 입고 싶은 옷을 보고 있으면

주인이 말을 걸어오고 옷을 주었다.

모두 그의 잘 생긴 얼굴 덕이었다.

프랑스 영화계에 세계적인 명성을 남긴 그는

2017년 5월 은퇴했다.

그의 건강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내 2019년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수술을 했지만 예후는 그리 좋지 않았다.

후유증에 시달리다 입원과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957년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50여년간 평단과 대중의 환호 속에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조로'(1975) 등에서 연기혼을 불태웠다.

19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중에게 소식을 전한 것은

그의 건강 때문이었다.

2019년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수술을 받고 긴 요양생활에 들어갔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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