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절에 모시고
49재까지 끝나고
주지 스님과 도와주신 스님들과
식사를 하고 다과 시간을 가졌다.
매주 일요일마다 가서 그런지
꽤 친해진 스님께서
다과 시간에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60을 갓 넘기신 비구니 스님이었다.
본인은 인천에서 태어났고
태어나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자기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악독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신은 커서 종교인에 귀의해서
봉사하고 아버지 대신 사죄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공계 대학에 들어갔지만
공부에는 뜻이 없었고
그 때부터 불교에 심취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겨우겨우 졸업하고
집을 나와 승가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을 스님으로 봉사하면서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처음 머리를 깎았던 순간을 회상했다.
사람이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번뇌와 고뇌를 다 내려놓는 것이고
그동안 맺은 인연과 절연을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슬프고 괴롭고 아쉽겠는가?
아무리 본인이 스님이 되고자 했지만
막상 그런 의식을 치르려 하자
엄청난 회한이 들었다는 것이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바
얼마나 그 때의 기억이 강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자주 보는 유투브의 한 신부님도
집을 떠나고 나중에 신부가 되어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본인 어머님께서 몇 번이나 혼절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품에서 곱게 자라
학교를 마치고 결정한 장래가
세속과 절연되는 직업을 택하는 것에 대한
부모님들의 충격은 백 번 이해할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내 자식이 그런 길을 걷는다고 하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본시 기독교 장로회 교회를 다녔다.
사실 처음 교회를 나간 것은
교회 다니는 예쁜 누나 때문이었다.
키도 크고 예쁘고 늘 얼굴에 미소를 짓고 다니는
누나가 어느 일요일에 보니까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생회 그런 곳에 가입도 안 하고
오직 누나만 보기 위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목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교회와 멀어졌고
지금은 가족이 한국에 오면 함께 교회를 가고
내가 토론토에 가서 함께 다닌다.
그러나 항상 성격은 곁에 두고
조금씩이라도 읽고 반성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간헐적 다이어트도 아니고
간헐적으로 교회 다닌다고 놀리지만
아직은 혼자 다니기가 좀 그렇다.
가끔 말씀이 좋은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유투브를 통해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내가 편한 방법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합리화시키지만
믿는 분들은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나는 그런 숫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