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한 갈구

RM <Indigo>(2022) 리뷰_上

by 링링

RM의 Indigo는 2022년 12월 29살의 나이로 발매한 첫 솔로앨범이다.


29살까지의 자신에 대한 아카이브라고 설명한 이번 앨범 <인디고>는 2022년의 RM에 점을 찍은 뒤, 삶의 곡선 속에서 경험을 통해 구축해 온 자신의 공간을 여실히 보여주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가장 개인적인 정서를 보편의 정서로 풀어내고자 한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슬픔에도 희망이 있고, 즐거움에도 우울이 묻어난다. 가장 보편의 정서. 가장 RM다운 모습.


이 글에서는 그의 앨범 속 1부에 해당하는 1, 2, 3번 트랙을 리뷰해보고자 한다.


1. YUN


윤형근 화백의 육성을 중추로 살을 덧붙인 형태를 띤 첫 번째 트랙이다.


앨범 커버 속 그림으로 등장하는 윤형근 화백은 한국 단색화 거장이다. 앨범커버에는 RM, 스툴 위에 쌓인 청바지 그리고 위에 걸려있는 블루(1972)가 등장한다. RM은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커버 속 그림은) 1번 트랙부터 끌고 가는 윤형근 화백의 시그니처가 나오기 직전, 마지막 습작 같은 페인팅이에요. 저는 아직도 저의 시그니처를 못 찾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습작을 가져왔어요.”


인터뷰에서 언급한 윤형근 화백의 시그니처는 '엄버-블루'연작일 것이다. 윤형근 화백의 ‘엄버-블루’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내 그림 명제를 천지문이라고 해본다.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구성은 문이다.” 윤형근 화백이 블루와 엄버 두 가지 색의 혼합으로 천지문 연작을 작업하기 전엔 블루 계열의 드로잉을 시도했다. 그때의 작품이 RM이 말한 시그니처 전의 습작이자 커버에 실린, '블루'다.


"I wanna be a human

‘Fore I do some art"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거. 그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그림만 잘 그리면 됐지 그 사람 사생활은 어찌 돼도 좋다'이렇게 볼지 몰라도 인간이 바로 서야.. 작품이란 그 사람의 흔적이니까 분신이니까 그대로 반영되는 거예요. 가장 높은 품격을 가진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 아닌가.." 윤형근 화백의 생전 여러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또 자주 회고되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인터뷰의 일부다.


그의 인터뷰는 RM 노래에 인트로에 샘플링된 "평생 진리에 살다가야 한다 이거야, 플라톤의 인문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인데, 진선미 진실하다는 '진'자 하고, 착할'선'자하고 아름다울 '미'하고인데 내 생각에는 진 하나만 가지면 다 해결되는 것 같다"는 그의 말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노래 속 화자가 반복 강조하는 “예술을 하기 전에 사람이 돼라”는 사람의 삶이 곧 창작의 연속이란 지점에서 보았을 때. 예술하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하는 모든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verse 2에서 언급된 테크닉, 스킬을 망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남기는 모든 족적, 행하는 것들. 그 전제조건에 “사람 되기”가 있다.


이는 최근 칸 영화제를 둘러싼 비판과도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종사하고 있는 예술업계에서도 늘 화두에 오르는 논쟁 거리다. 개인의 도덕성과 예술성은 함께 가는 것인가. 그 업계의 종사자로 윤 화백의 ‘진’, ‘사람 되기’ 대한 믿음을 인용해 온 것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낀다.


"Cause true beauty is a true sadness.

Now you could feel my madness?"


"모든 욕심을 다 버려야 해, 천진무구한 세계로 들어가야지. 그러니까 그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야. 근데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은 해야지. 그게 인간의 목적인 것 같아"


도달하지 못할 이상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목적이다. 도달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는 윤 화백만의 정의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역시 사실주의 예술을 두고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 있다. 롤랑바르트는 우리의 언어로 세계 전체를 포괄할 수 없기에 현실에 대한 사실주의 예술은 결과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주의 예술의 갈구가 무의미한 행위는 아니다. 도달하지 못할 사실주의 문학에 대한 갈구는 언어를 살아있게 한다, 현실을 포착하려는 갈구만이 언어를 언어로 존재하고 또 확장하게 만든다.


RM 역시 한 명의 예술가로서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도달하고자 하는 예술을 갈구한다. 그의 갈구는 앨범 속 참여진, 이이언부터 에리카 바두까지. 또 붐뱁부터 시티팝까지 여러 장르를 담은 그의 트랙에서 갈구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또 그의 갈구 속에서 확장하고 또 구축하고 있는 가장 그 다운 음악세계를.




2. Still Life


팝한 느낌이 매력적인 곡이다. 특히나 앤더슨 팩의 펑키한 보이스가 노래의 그러한 매력을 잘 살려준다. 전체 트랙 중에서 가장 서구권이 추구하는 이지 리스닝에 가까운 노래. 다만 가사와 주제에서 볼 수 있듯 쉽게 쓰인 곡은 아니란 느낌을 여실히 풍긴다.


Still life는 한글로 번역하면 정물이다. 정물화는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 즉 화초, 과일, 죽은 동물과 새, 악기, 식기, 책 등을 그린 회화로, 독립된 화제로 확립된 건 17세기다.


"I'm still life, but I'm movin'

Just live now, goin' forward, yeah

멈추지 않는 정물

또 피워 나의 꽃을"


RM은 Still Life란 주제를 선정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뮤지엄을 다닌 지 좀 됐을 때, 정물을 'Still Life'라도 하더라고요. 꽃은 살아있는 거지만 캔버스에 박혀 있을 땐, 어떻게 보면 움직이지 않는 죽어있는 생명을 정물이라고 하잖아요 한국에선. (반면 영미권에 쓰는) Still Life라는 말은 '아직도 삶'이라는 걸로 다가왔어요, 그 화가가 보고 그린 꽃은 이미 시들고 죽어 없겠지만 화가가 물감을 칠해서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 문학가의 '낯설게 하기 (Defamilarization)'가 떠올랐다. 친숙한 사물은 주목하지 않는다는 시클롭스키의 말처럼, 정물이 서구권에선 Still Life로 해석되는 것에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RM은 정물, 정적인 사물이 캠퍼스 속에선 지속되는 생명을 부여받는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 역시 앨범을 통해 세상에 작품을 남기는 사람으로, 예술인으로 대중의 뇌리에 기억되는 사람으로서 작품 속에서 Still life으로 남겨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정물과 Still life에 대한 해석은, 영화 <코코> 또는 인디언의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모두 사람의 진정한 죽음은 살아있는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졌을 때라고 말한다. 반대로, 육신이 세상을 떠나도 그의 앨범이 회고되고 계속해서 소환된다면, 그는 어떠한 형태로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다만, 그는 아직 육신도 살아있으니. 정물 아닌 동물이다. 동물로 살아가며 삶의 태도에 대한 숙고 역시 가사 속에 드러난다. 과건 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는 지나간 것을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것을 짐작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을 살아간다. 오래 공들여 Still Life가 될만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공통된 답변이다. 매 순간만을 충실히 살다 보니 이곳에 왔노라고.


"E'ryday is my day 1, brotha

Baby 난 돈으로 시간을 벌어

걔네 조롱은 듣지 마 니 귀 버려

꼭 버러지들 온라인에 목숨 걸어

Trendsetter? I'm a friend, better

식상해질 정도의 go-and-getter

결국 네가 원하는 대론되지 않았지

바람관 달리 너무 잘 살아대네 내 뜻대로"


담담하게, 매 순간 살아가는 RM은 인터넷에 살아가는 이들의 조언은 듣지 않고 나아가기를 태도로 선택했다. 이쯤의 가사를 들으면 자연스레 초기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 All Day


2번째 트랙은 팝적 요소가 강해 서구권 테이스트에 맞는 이지 리스닝 곡이라면, 2000년대 한국 힙합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위한 이지 리스닝 트랙이다. 피처링은 그 시절 힙합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인 에픽하이의 타블로다.


"꺼져 인공지능 fuck the algorithm

사색이 필요해 fuck all the rhythm

사유할 틈을 안 주는 내 바이오리듬

언제쯤 써보게 될까 나만의 시는?"


직관적인 가사다. 쾌락과잉시대에 인간은 "쾌락 그 뒤에 따라오는 고통"의 사이클을 반복한다. 도파민 중독은 사람을 갈망의 고통과 짧은 쾌락의 순간 속에 허덕이게 한다. 즐거움 뒤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또 짧은 쾌락을 찾아다니는 시대, 높아진 쾌락의 기본값을 위해 더 큰 자극을 찾아다니는 시대.


도파민 중독으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시소가 항상성을 회복하기까지 4주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는 자기 통제능력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해, 늘 자신을 중독의 범주로 정의하기를 꺼려한다. 가령 가사 속 알고리즘이 사용되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유튜브가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내가 찾기 전에 내 취향의 것"을 제안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다만 이 매력은 주로 인간을 무한 도파민 굴레에 빠뜨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나보다도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내 취향이 오롯이 내 것이라 말하긴 어려울 테다.


과잉시대의 역설. 가진 게 많다, 가질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다. 균형을 잃은, 혼란의 시대에 RM은 나만의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나만의 시를 쓰는 것은 곧, 과잉시대에서 가장 나다운 것을 취사선택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만의 것을 꾸려나가는 능력은 건강한 쾌락으로 이어진다. 나만의 부표를 둬야만 과잉시대란 급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All Day까지의 트랙은 상승의 형태를 띤다. 또 밝고 비교적 이지 리스닝 장르의 외양을 갖는다. 물론 그 안의 메세지는 그의 이전 앨범이었던 mono.와 유사하게 자기반성적, 시대비판적 색채를가 짙다. 이어지는 다음 트랙 <건망증(with 김사월)>은 포크이고 사색과 반성의 문학을 한다. 또 한국의 메인 인더스트리인 BTS의 리더 RM과 인디음악의 일부인 김사월의 만남이란 점에서 확장하는 그의 음악세계에도 시사점이 있다.



그의 앨범의 2부에 해당되는 <건망증>을 비롯한 여타 트랙에 대한 비평은 다음 게시물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