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친구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말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렸다

by 낙하산부대

대학 시절, 나는 학군단에 몸담았다.


군 장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으로 들어간 그곳에서 나는 전우애와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지는 문화와 맞닥뜨렸다.


전통이라는 이름은 늘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때때로 그것은 선배 세대의 악습과 구분되지 못한 채 우리에게 전해지곤 했다.



내가 학군단 생활을 하던 시절, 가장 큰 갈등은 동기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동기들이었지만, 우리는 사소한 규율과 권위, 그리고 서로 다른 성향 속에서 쉽게 부딪혔다.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상대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고, 작은 오해가 돌이킬 수 없는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동기들이 나를 믿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특히 몇몇 동기와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당시 학군단은 명예와 동기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그것은 ‘전통’과 '악습'의 경계에서 갈등을 키우는 씨앗이 됐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학군단장의 지시를 이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나와 몇몇 동기들과 ‘제적’이라는 무거운 판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제적이라는 두 글자는 내 젊은 날의 자존심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함께 땀 흘리며 훈련을 받았던 동기들은 임관의 길로 나아갔지만, 나와 갈등을 겪던 동기들은 학군단 문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마치 전우들로부터 배신당한 듯한 심정이었고, 나 또한 그들을 향한 원망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과 패배감이 깊게 밀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다시 학군단에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


장교 임관의 길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나는 예전과 달리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후배들을 맞이했다. 학군단에서 경험했던 갈등과 상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다.


내가 당했던 불합리와 아픔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들을 대할 때는 늘 ‘이들이 나와 같은 상처를 겪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마음 한편에 남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임관 후에도 같이 제적된 동기들과는 어색한 거리를 유지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미완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몇 해가 지나, 나는 한 장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그토록 부딪히며 갈등했던 한 동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젊고 강인했던 그가 왜 이토록 빨리 우리 곁을 떠나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차마 관 앞에 서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수없이 맴돌았지만, 그 말을 전할 대상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던 명예와 전통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를. 그때는 서로를 몰아붙이고 옭아매며, 그것이 학군단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그것은 모두 젊음의 치기와 어리석음이었을 뿐이었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함께 웃고, 함께 버티며, 끝까지 서로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 나와 동기들은 모두 서툴렀다.


성숙하지 못했기에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상처를 주었고, 용서보다는 자존심을 앞세웠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은 오늘의 나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동기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크고 작은 갈등, 그리고 끝내하지 못한 화해의 말. 세월이 흐를수록 그 미안함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마치 내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처럼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관계가 깔끔히 정리되고,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될 수는 없다. 어떤 상처는 끝내 미완으로 남고, 어떤 화해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맴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더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명예와 전통이라는 이름 앞에서 무조건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가치일 때만 존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어떤 자존심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것이 내가 학군단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그 시절의 나는 어렸다.


너무 어렸기에 화해할 용기를 내지 못했고, 너무 서툴렀기에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짐한다.


다시는 그때처럼 미완의 관계를 남겨두지 않으리라고.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께하는 이들에게 미안함을 쌓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미안하다, 친구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부디 저 하늘에서는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