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인생에 대비하여
바야흐로 백세 인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예순을 넘기면 장수한다고 했고, 일흔이면 큰 잔치를 열어 자손들의 축복을 받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백세를 사는 이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이제는 ‘어떻게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의미 있게 오래 사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서 있다.
나의 삶을 단순히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앞으로 한 번 더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퇴직 후 손자, 손녀 돌보며 노후를 보낸다는 옛말은 이미 낡은 풍속이 되었다. 그러니 미래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큰 이변이 없다면 나는 앞으로 십여 년 더 회사에 다니고 정년을 맞이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삼사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 지금부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그 고민 속에서 내가 찾은 답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무탈하게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승진이나 성과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더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도록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다.
월급을 받는 만큼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흔들림 없는 소신을 나는 지니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묵묵히 하루를 보내고, 맡겨진 업무를 끝까지 책임 있게 수행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회사 생활의 기본이자, 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남들 앞에 눈에 띄는 화려한 성취는 아닐지 몰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성실이야말로 나의 경력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나에게 회사는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끈이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나는 직함과 자리를 내려놓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나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착역’이 아니라 ‘환승역’에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두 번째는, 정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공인중개사, 행정사와 같은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머릿속은 금세 포화 상태가 되곤 했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문제를 풀다 보면, 다시 젊은 시절처럼 도전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아직 배울 수 있고,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 더 큰 의미였다.
글을 쓰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내 삶을 다시 바라보고, 과거를 해석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또 다른 공부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게으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나태함이다.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방치하면 쉽게 나를 삼켜버린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은 금세 굳고, 머리를 쓰지 않으면 사고는 느려진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몸과 머리를 끊임없이 활동하게 만든다.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 새로운 분야의 책을 펼치는 일, 글 한 편을 붙들고 고심하는 일 모두가 그 방편이다.
남은 인생을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배우며 사는 삶을 원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작은 성취를 통해 스스로를 격려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 말이다.
동시에, 나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데 급급했다면, 앞으로의 날들은 나를 둘러싼 이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백세 시대라는 말은 더 이상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나에게 구체적인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회사에서의 성실한 마무리, 그리고 정년 이후를 위한 꾸준한 준비. 그 두 가지가 나의 인생 2막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이다.
언젠가 지금의 이 고민과 결심이, 더 길어진 인생 여정에서 흔들림 없는 나침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