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손길

by 낙하산부대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결국 결혼까지 그 마을에서 하셨다.


아버지보다 한 살 어린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뛰어나 할머니께서 “저 아이는 우리 집 며느리로 맞으면 좋겠다” 하며 미리 점찍어 두셨다고 한다.


인연은 그렇게 뿌리를 내려, 스무 살 갓 넘긴 청춘 남녀가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전통혼례를 치렀다. 꽃가마가 오가고,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지던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은 어머니에게 고단한 길의 시작이었다.


원래라면 큰어머니께서 맡아야 했을 시부모 봉양과 집안 살림을 몸이 약했던 큰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떠맡았다. 하루 세끼 시부모님을 챙기고, 세 명의 시동생을 보살피는 일까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넉넉지 못한 농사꾼 집안에 시집온 덕분에 논밭일도 피할 수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도 전에 허리 굽혀 잡초를 매고, 노을이 지도록 벼이삭을 베어내야 했다. 그 무게가 어머니의 허리를 일찍이 휘게 만들었다.



자식 문제 또한 쉽지 않았다.


첫째로 태어난 큰딸을 돌보며 얻은 둘째 아들은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큰집에 양자로 보내야 했다. 그 뒤에도 두 딸을 더 낳고서야 비로소 나를 얻으셨다.


잇따른 출산과 농사일, 집안 살림은 어머니의 몸을 조금도 쉬게 두지 않았다. 그러나 고단한 날들의 연속 속에서도 어머니는 늘 꿋꿋하셨다.



세월은 어머니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시부모를 모시는 일부터 집안의 대소사까지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다. 우리 오 남매를 키우는 일까지 겹쳐,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랐을 터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삶에서 원망이나 불평의 기색을 본 기억은 없다. 오히려 술을 즐기던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려 애쓰셨고, 부족한 형편 속에서도 우리를 누구보다 바르게 키우려 애쓰셨다.



어머니는 억척스러우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도움을 청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없는 대로, 부족한 대로 살아가셨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언제나 넉넉했다.


우리에게 새 옷을 사줄 여유는 없었지만, 타고난 손재주로 직접 옷을 지어 입히셨다. 물려받은 헌 옷을 뜯어 새롭게 수선해 주시곤 했다. 가을거지를 마치고 돌아와 고단한 몸으로도 밤늦도록 뜨개질을 하며 자식들에게 따뜻한 조끼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선하다.



올해, 어머니는 여든의 나이에 접어드셨다.


오 남매는 모두 장성해 가정을 이루었고, 손자손녀들까지 모두 자라 대가족이 됐다. 팔순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함께 나누던 자리에서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보니 눈가가 저릿해졌다.


축복받아야 할 자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빈자리가 아쉽게 느껴졌다. 만약 살아 계셨다면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으셨을 아버지의 얼굴이 그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는 두 달 전, 집 안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다리를 다치셨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고, 한두 달만 재활을 잘하면 예전처럼 지내실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우셨다.


“내가 자식들 고생만 시키는 것 같다”라며 근심을 털어놓으셨다.


나는 어머니께,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도 가볍지 않았다.


어머니의 아픔은 단순히 다리의 통증에 그치지 않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속 깊은 마음까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로, 나는 매일 퇴근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저녁은 드셨어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하루의 소소한 이야기를 묻고 듣는 시간이 내겐 가장 따뜻한 일과가 되었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전화를 기다리신다. 이젠 하루라도 전화가 없으면 오히려 걱정하신다.


나는 그 사실이 가끔 마음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하루가 아직은 내 목소리 하나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바란다.


어머니가 조금 더 건강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아직도 나는 어머니께 보답해야 할 것이 많다. 내가 드린 사랑과 정성은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필요한 분이고,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막내아들이다.



세상은 변해가지만, 어머니의 삶은 언제나 묵묵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푸르던 강물이 세월을 지나 은빛으로 빛나듯, 어머니의 세월 또한 그렇게 흘러왔다. 그 긴 세월 동안 굽은 허리와 거칠어진 손마디에 새겨진 것은 고단함만이 아니라, 자식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이었다.


나는 그 사랑을 평생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며, 이렇게 속으로 되뇐다.


'어머니, 조금만 더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 아직도 저는 어머니가 필요한 나이입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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