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들에게 배운다

자라는 아이, 성장하는 아버지

by 낙하산부대

2012년 9월, 아들이 태어났다.

흑룡의 기운을 머금고 자란 아들이 열 달간의 기다림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분만실에 울려 퍼지던 우렁찬 울음소리와 작디작은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빠가 됐다는 감격에 아들의 탯줄을 직접 자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닮아 나 역시 아들바보가 되었다. 아들이 울고, 웃고, 잠들고, 밥을 먹는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작은 표정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한 번의 웃음에도 온 세상이 환해졌다.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의 결심은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아들은 나와 아내를 반반 닮았다.


외형적으로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지만, 성격과 혈액형, 생활 습관은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덕분에 몇 년째 치아 교정을 하고 있다. 훌쩍 큰 키만큼은 아빠를 닮은 것이라고 강조해 보지만, 아들은 늘 “아빠의 안 좋은 것만 닮았어”라며 투덜댄다.


그 말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솔직함 속에 담긴 애정이 더 기쁘다. 부모와 닮은 점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은 우리 가족만이 누리는 소중한 대화의 장이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언어적 재능을 보였다.


27개월 무렵, 갑자기 한글과 영어로 된 문장을 술술 읽어내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외할머니께서 단어 몇 개만 가르쳐주신 것이 전부였는데, 스스로 단어를 이어 읽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광경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아내는 '아들의 지능은 엄마에게서 유전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아들의 머리가 좋은 건 다 자신 덕분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평생 감사하며 살라는 농담 섞인 말에 나는 속으로 의심하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는 아들의 강점 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영어책을 읽히다 보니 어느새 수백 권을 넘어섰고, 지금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올해 초 가족 여행으로 미국에 갔을 때 그 재능은 빛을 발했다. 나는 기본적인 대화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십여 년 만에 영어 회화 공부를 다시 했는데, 아들은 옆에서 듣더니 곧바로 말했다.


“아빠, 그냥 내가 통역해 줄게. 문법도 안 맞고 발음도 이상해. 그만해.”


순간 머쓱했지만,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살 때마다 아들이 대신 나서서 통역해 주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아이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에 씁쓸함도 있었지만,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서는 아들의 어깨가 그저 든든했다.



언어뿐 아니라 수학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고등학교 과정의 문제를 곧잘 풀어냈다. 대수와 기하, 조합, 통계 같은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와 달리, 아들은 그런 문제를 마치 퍼즐 맞추듯 즐겼다.


어릴 적 서점에 데려가면 동화책보다 수학 문제집을 먼저 집어 들었고, 크리스마스나 생일 선물로 수학 문제집을 받으면 세상 가장 큰 소원을 이룬 듯 환하게 웃었다.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 모습은 아들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아들은 게임 개발자가 되는 꿈을 품고 있다.


그 꿈을 이루려면 영어, 수학, 과학, 코딩을 잘해야 한다며 자신이 필요한 학원을 스스로 찾아보고 보내 달라고 했다.


놀라운 건 숙제를 대하는 태도다. 자정이 넘어도 숙제를 다 끝내지 않으면 잠들지 않고, 혹시라도 깜빡 잊으면 새벽에 일어나 마무리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때론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며 스스로 균형을 잡지만,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법이 없다.



나는 아들을 키우며 배우는 중이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 나는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버지로 살아가는 법을 아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아들이 보여주는 성실함, 호기심, 자기 주도성은 내게도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흑룡의 해에 태어난 아들은 이름처럼 힘차고 곧게 자라났다. 이제는 내가 그에게 삶을 가르치기보다, 그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순간이 더 많다. 언젠가 아들이 어른이 되어 자기 길을 당당히 걸어갈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들아, 네가 있어서 아빠는 참 행복했다. 네가 살아온 날들이 곧 아빠의 자부심이었다.”



나는 아버지로서 또 하나의 다짐을 한다.


앞으로도 너의 가장 든든한 응원자가 되리라. 넘어질 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고, 기쁠 때는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쳐주며, 네가 선택한 길 끝에서 언제든 돌아볼 수 있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리라.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네가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아빠는 늘 네 곁에 서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