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by 나르는꿈

나는 결혼 40년 차 주부이면서 엄마이고 며느리이면서 할머니이다.

결혼하면서 남편과 함께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동갑인 우리 부부는 동생이 넷이고 그 동생들의 연배도 한두 살 차이로 비슷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넷인 그대로 남편과 한 가족이 되었다. 다른 게 있다면 결혼 전 우리 집에서의 나는 맏이로 동생들에게 큰언니 대접을 받으며 동생들에게 심부름도 시키고 간혹 말 안 들으면 야단도 치고 했지만 결혼 후 남편의 동생들에게는 깍듯이 아가씨 도련님이라 칭하며 모셔야 할 시집 식구였다. 함부로 심부름을 시킬 수도 아닌 걸 보고도 아니다 고 혼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결혼하던 해 고등학생이 된 하나 있는 시동생이 틈틈이 심심하지 않게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나는 호기롭게 시어머님에게 말했었다. 뭐가 잘못인지 따끔하게 야단치셔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오히려 시어머님께 된통 야단을 맞았다. 시동생이 잘못하면 감싸고 다독여야지 형수가 살갑게 대하지 않으니 애가 밖으로 도는 걸 왜 애만 야단치냐고 어떻게 더 궁지에 몰아야 하냐고 되려 나를 궁지에 몰았다. 내가 못된 형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 동생과 시동생 시누이는 다르다는 것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족을 떠나 남편과 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정확히는 장남인 남편의 가족들에게 결혼으로 자연스레 전입된 것이다.

가족 간에도 서열이 있고 각자의 본분이 있다. 한 가정이 평온하려면 서로의 본분을 지키면 된다. 처음 깨달은 것은 나만 순응하고 조용하면 된다는 것이었고 실제가 그랬다.

시집가면 시집의 뜻에 따르는 게 당연하다 여겼으니 내 생각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가족으로 전입되어 스며든다고 생각했었나?

성인들이 되어 다들 떠나고 등본상으로 세대주인 남편과 아들은 이가 나는 손가 시어머님은 정가 이렇게 세 성의 네 명이 기재되어있다. 가족이란 같은 성씨가 아닌 건 확실한 거 같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가족이라 당연한 것도 아닐 것이다.

남편은 장남으로 자신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성실했다. 나는 한 가족이라 의심한 적 없이 남편을 믿고 순응하며 살았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명절이나 제사 등 행사 때면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가족들의 모임은 훈훈했다. 시어머님이 치매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끌벅적한 형제들의 모임도 있었고 시모님도 가끔씩 나들이로 놀다 오시곤 했는데 구십이 넘으신 노인의 치매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아예 발걸음들도 뜸해지는 것이다. 시어머님의 치매 증상은 나만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모든 가족들 먼 친척까지도 띄엄띄엄 기억이 왔다 갔다 하면서 알아보곤 하는데 사십 년 수발든 며느리 나를 일하는 아줌마로 일관하는 것이다. 더욱 허망한 것은 시누이의 방문 때이다. 병석에 계신 자신의 시어머님을 간병하는 간병인에게 선물을 주고 오는 길이라면서 스스로 밥도 챙겨 먹지 못하는 치매 환자인 친정엄마에게 지폐를 쥐어주며 맛난 거 사 드셔하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서서 올케인 나를 보고 언니 고생해,라는 인사말을 웃으며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늘했다. 한때는 함께 살던 한 가족이었던 사람 결혼해 나갔어도 좋은 날에는 가족이라 함께 모여 어울리는 사람이다.

한 번은 시어머님의 건강이 나빠져 요양원을 생각하며 의논을 해보자고 남편이 형제들을 불렀더니 집에 와서 어머니의 상태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끼리 밖에서 모인다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불편해서 편하게 얘기하려고 그런 거라고 나더러 좀 친절하면 좋잖냐고 남편이 원망 아닌 원망을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집안의 평온을 위해 나만 조용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전입된 가족 며느리인 나는 이 집에서 가족인가 일하는 아줌마인가?

가족이란 혈연과 혼인으로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데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어떤 존재일까 적어도 가족끼리는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