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불쌍했어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지는 않았지만 술을 즐겼다.
평소에는 조용하시고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술이 들어가면 기분도 풀어지고 그때부터 말문이 트이는 사람처럼 말이 많았다.
특별한 사연이 많은 게 아니라 다 아는 지극히 사소한 일들에 대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는 동의를 구하는 듣는 사람 질리게 만드는 술주정이 있었다.
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마신 술에 취해서 혼자 기분 좋게 살짝 비틀거리며 오신 아버지의 비위를 맞춰가며 어서 잠드시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그럴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는 술을 못 마셨다.
시장에서 장사로 지친 몸으로 집으로 와서 저녁 끼니를 준비하는데 아버지의 팔자 좋은 무한재생되는 술주정을 들어줄 여유는 한도가 있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언쟁이 벌어지고 두 분이 싸우고 난 다음 날 아침은 나만 이상했다.
때로 과격했었던 두 분의 싸움이었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버지 속 풀어지라고 참기름에 계란 동동 떨구어 주는 엄마가 이상하게 불쌍했다.
어떻게 그렇게 동네가 다 알도록 난리를 부려놓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평온할 수가 있는지 그것도 창피했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크게 두 분이 싸우고 난 어느 날아침 일상적인 아침상을 마주하고 갑자기 서러워져서 우리 집도 안 싸우고 사이좋게 항상 이러면 안 되냐고 울면서 말한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오륙 학년 즈음이었다.
밥을 먹던 아버지는 밥상머리서 눈물 보인다고 낮게 무어라 하셨고 엄마는 시선을 외면한 채 무슨 소리하냐는 듯 아침을 서두르셨다.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신 뒷날은 자주 울었던 거 같다.
학교 가는 길에서 교실 창가에 앉아서...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능력이 있는데 얼마든지 편하게 사실 수 있는 거 같은데 왜 아버지랑 살면서 고생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린 자식들 특히나 첫째인 나 때문에 발목 잡혔다는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괜찮은데 동생들은 지금처럼 내가 돌보고 우리들은 괜찮은데... 이혼하고 엄마도 편하고 우리도 조용하게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어린아이의 생각을 했었다.
어렸지만 엄마가 불쌍했다. 남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책임지고 사는 엄마가 여자로서 불쌍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도 여자로서 불쌍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혼이라는 게 결혼한다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결혼하고 사십 년이 넘어가면서 자유롭고 싶어 이혼의 또 다른 말 졸혼을 꿈 꾸지만 그 끝이 내 엄마처럼 어린 자식이 아니라 어린 손주까지 맘에 걸리는 것 보면 이혼이란 것이 결혼보다 더 어려운 선택인 거 같다.
장사를 하셨던 엄마의 주머니는 언제나 현금이 두둑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물질적인 것은 기대하지도 않으셨던 거 같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신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내게도 느껴졌던 엄마의 바램은 남편의 다정한 토닥거림이었다.
술만 드시지 않으면 다정하진 못해도 조용한 남편이라 그나마 엄마는 사이사이 낀 술주정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런 모습을 보는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가 여자로서 불쌍했다.
중학교를 가고 커 가면서 나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엄마에게 요구할 줄만 알았지 어린 그때처럼 엄마를 바라보는 날이 줄어들고 나 자신에 관한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끔씩 엄마의 넋두리를 들을 때면 귀찮아하고 심지어 짜증 나 하기도 했던 거 같다.
딸은 왜 망각했을까.. 엄마가 불쌍했었던 그 기억을
엄마는 딸에게 위로받고 다정한 말을 기다렸을 텐데 아버지에게서 처럼
어릴 적 그렇게 원했던 엄마의 시선을 딸은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내밀며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이가 결혼을 해서 내가 할머니가 된 어느 날 내 아이의 뒷모습에서 문득 내 엄마가 나의 뒷모습을 보고 느꼈을 쓸쓸함을 떠 올랐던 순간이 있었다.
우리 엄마도 돌아서 제집으로 찾아가는 나의 뒷모습에 얼마나 쓸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