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
나는 지식에 대한 허영기가 있다.
물론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더 많은 허영기가 있겠지만 딱 하나 스스로 인정하는 허영기는 지식에 대한 허영이다. 그렇다고 어디서든 무엇이든 알은 체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못된다. 나는 대체로 뒤에서 듣는 입장이고 알아도 혼자만 알뿐 내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지식에의 목마른 갈증에 때로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이 허영심을 엄마가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ㅡ엄마, 이것은 원망이 아니고 감사함이야ㅡ
나는 중학교 때 처음 문학사상 문예지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 문학사상 두툼한 월간지를 접했을 때 나에게는 수준이 높은 책이란 걸 느꼈다.
그 책을 내게 처음 내민 사람이 우리 엄마다.
시장에서 같이 장사하는 옆가게 대학생딸이 좋은 책이라고 매달 읽더라고 내 딸도 읽어보라고 엄마가 늦은 밤 불쑥 내미셨다.
엄마는 그 책의 내용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다른 월간지들처럼 사진이나 그림이 많은 게 아니고 빽빽이 글로 가득 찬 두툼한 월간지라 지식인의 책이라고, 옆가게 대학 다니는 딸이 으스대며 읽는다고 너도 읽어보라고 중학생인 딸에게 한동안 매달 사다 주셨다.
평론이나 책의 서평글 논평 같은 주제들은 그냥 제목만 보고 넘겼다.
연재소설과 시 수필 부문들은 챙겨 읽었는데 그중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수필중 글귀는 필사도 하고 암기도 하며 친구에 대한 나의 로망을 대신해 주며 글 자체가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된다. 여전히......
소설책을 읽느라 밤을 새워도 책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엄마는 흡족해하셨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셨던 거 같다.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어서 엄마의 생각을 정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체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는 아무 말 안 하는데 그냥 나를 높이 평가하는 때가 종종 있어 부담으로 여겨지고 나 자신은 더욱 소심해지는 기분도 든다. 가만히 있으면 이등은 한다고 말없음이 나를 격상시키는 꼴이다.
1929년생인 우리 엄마는 그 시절 학당도 다녔었고 해방되기 전에는 일본말도 배운 적 있는 활기찬 소녀였었던거 같았다. 한분 계신 외삼촌, 엄마의 오빠에게 여자가 어딜 돌아다니냐고 매를 맞고 혼나면서 이루지 못한 배움의 꿈이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나는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고 열망이 있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로만 생각했지 엄마의 꿈과 엄마의 어린 시절 같은 건 미처 생각 못했다. 이렇게 늦을 수가 있나...
정말 나는 너무도 무식한 이기적인 딸이었다.
지식에의 갈증으로 허기져 있으면서도 나는 스스로 무얼 할 줄 몰랐다. 열심히 찾고 방황을 해도 부딪혀야 했었는데 나는 손을 내밀고 엄마의 손만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수동적인 인간
책을 디밀면 읽고 행동을 해야지 엄마만을 바라보는 딸이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혹시 또다시 엄마의 꿈이 허물어지는 걸 느끼신 것은 아닐까?..
가엷은 엄마..
엄마딸이 손주 돌본다고 중단한 방통대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해 마무리 대학졸업장을 가지면 엄마는 마음이 좀 풀어지실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은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