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일찌

장마 어서 오시고

by DIA


솨-----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30분.


일찍 잠이 든 것도 아니고 급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일찍 깨버렸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봤지만, 이미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이나 다녀와야겠다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부시시한 몰골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이른 아침의 헬스장에는 사람이 적다. 점심쯤만 돼도 정신없이 붐비지만, 아침 시간대는 정말이지 고요하다. 한참을 운동하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웠다. 오랜만에 무리해서 그런지 어지러움이 쉽게 가시지 않았고, 결국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고 샤워실로 향했다.


개운하게 씻고 헬스장을 나서니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싸구려 비닐우산을 쓰고 축축한 거리를 걸었다. 자주 깜빡하는 성격 덕분에 집에는 비닐우산들이 한 무더기다. 우산을 안 챙겨 나와서 새로 산 적도 있지만, 가끔 고장 난 우산을 깜빡하고 벽장에 다시 넣어두었다가 비 오는 날 하필이면 그 우산을 챙겨 나와서 또 새 우산을 사기도 한다.


실은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사망 직전의 우산은 이미 자기 책임을 다한 듯 맥없이 고개를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우산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과거의 나를 책망했다. 내가 아직도 샤워실에 있는 건가 싶을 때쯤, 문득 내려다본 장화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걸 보며 '사기 잘했다.'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디 앨런, 레이디 데이 인 뉴욕


집으로 돌아와 미리 얼려두었던 아보카도를 꺼내 코코넛 워터와 그릭 요거트를 함께 갈아 아보카도 스무디를 만들었다.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보카도 스무디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스무디를 꿀떡꿀떡 마시다 보면 금세 배가 찬다. 그렇게 야무지게 아침을 챙겨 먹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좋아하는 빈티지 옷과 편한 반바지를 챙겨 입고 다시 집 밖을 나섰다. 여전히 비가 쏟아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비와 어울리는 노래를 선택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정류장에 다가서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지하철에 도착했을 때도 마침 들어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원래 같았으면 앉을자리부터 찾았겠지만, 그보다 책들이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 웬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돼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파주시에서 기획한 것으로 독서 권장을 위해 열차 안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놓여 있는 걸 보며 책장에서 흥미로운 제목의 책 한 권을 꺼내어 읽었다. 열차 안은 조용했고, 창밖은 푸릇푸릇해 책 읽기 완벽한 환경이었다. 단 한 번도 열차에서 책을 읽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경험하고 나니 앞으로 가방에 책 한 권을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분 같은 30분이 흐르고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시간을 확인해보니 1시였다.


작업실에서 짐을 내려놓고, 텀블러를 꺼내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커피를 마시며 할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저녁이 되었다.


곽재용, 클래식


오늘이 가는 게 아쉬워 몇 글자 적어 내리고 있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오고, 축축한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린다.


여름을 싫어하는 내게 장마는 곧 다가올 끔찍한 더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등줄기에 주룩주룩 땀을 흘리게 만드는 더위. 식빵 마냥 구워지는 그런 더위!


그런데 요즘은 뭐랄까, 여름이 좋아질 것만 같다. 꽤 오랫동안 여름을 싫어했는데, 내가 변한 건지 여름이 변한 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여름이면 생각나는 음식과 노래, 그리고 지금 이 빗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