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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 Mar 20. 2022

그를 위한 변명

후기 하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에 조영남씨가 출연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나를 재수 없게 보는가'라는 고민 상담이었고 그 중심에 있었던 세 가지 이슈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이었다.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한 그의 필터링 없는 자유로운 언행을 자주 접했던 터라 대중의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고 상담을 청했다는 것이 일단 흥미로웠다.


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그의 탁월한 가창력과 별개로 자기 기분대로 편하게 살아도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탤런트와 운을 타고난 사람, 경솔한 언행으로 얼굴을 지푸리게도 하지만  때론 웃음을 짓게도 만드는 아슬아슬하지만 꽤 솔직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 두번째 이슈인 독도 설화(舌)로 인한 친일 논란과  그림 대작(代作) 문제로 사회적 비판을 받은 것들에 대해 나름의 변명을 했고 다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세 번째 이슈였다.

그의 전처인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 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최고의 우아한 복수'라는 표현을 썼다가 전시회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대중들의 호된 공격을 받았었나 보다.


 그는 대중의 오해에 몹시 억울해했고, 우아한 복수라는 표현이 자신이 예전에 힘들게 했던 그녀에 대한 자책을 담은 최고의  칭찬이었고 기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광대로서의 직업의식도 작동했었노라고 해명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난감해하는 표정과는 달리 나는

노래도  악보대로 부르는 법이 별로 없고 평소 자신의 방식대로 유머나 풍자를 즐기는 사람이라 

참으로 그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일부 적극적인 대중들의 반응이었겠지만 우리 사회가 한 예술인의 자유로운 기질 하나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여유도 없구나라는 씁쓸한 마음이 뒤를 이었다.




그 프로에서 늘 솔로몬보다 현명한 솔루션을 보여주던 오박사의 진단은 이랬다.


그가 논란을 불러올 여지가 많은 모호한논란 화법을 매번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그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유머나 비유 대신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해보시라 충고했고

상대방에게 의사전달시  중요한 내용부터 말하기 시작하는 역피라미드화법도 권했다.

그가 그녀의 조언에 따라 다시 기자 인터뷰를 가장하여

"나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 역사적인 사건이며 쾌거.. 문화발전에 기여..." 라고 장황하게 말하자

그곳에 있던 모든 출연진들이 박수를 치며 특급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당연히..

나는 환호하는 그들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조영남이 아니니까.

정치인은 정치인처럼, 학자는 학자처럼, 광대광대처럼..

너는 너처럼, 나는 나처럼 이야기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며 바르고 공손하게 하면 물론 좋겠지만, ( 과연 좋을까? )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애초에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차라리 자신의 진심을 왜곡되게 해석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충고했을 것 같다.

어딘가에서는 비난을 하지만

어딘가에선 분명 멋지다고 할 사람이  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설사 나의 진심을 이해해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하더라도 ..그 또한 어쩌겠는가!


그에 대해 변명을 좀 해주자면

첫째.  그는 자칭 광대다.  

둘째.  악의가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결정적으로  그는 자그마치 78을 그렇게 살아왔다.

 


사람들은 매 순간 자신의 틀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건 점점 굳어져서 바꾸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고상한 말투도 필요하지만, 투박한 표현도 꼭 필요하다.

장미도 있고, 초라한 이름 모를 들풀도 있고, 독을 품은 꽃도 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모두 다양하게 섞여 사니까 멋있는 거다.


내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내 취향에 맞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오리 다리가 짧다고 학의 다리를 잘라서 붙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아니라면 웬만한 것들은 폭넓게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이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덜 피곤한 일일 것이다.

식상한 말이지만, 누군가의 말투나 행동이 거슬리거나 기분 나빴다면 그건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출연자에게 선물하는 오박사의 쿠션에는 '어린이 말고 어른이 되자'라고 쓰여있었다.  

(...!)

그것이 아무리 선의라하더라도  78년이라는 긴세월을 나름대로 살아낸 사람에게 주는 글귀로는 다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쿠션을 들고 왜 이제야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며 '역시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한다'며 바보처럼 웃었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냥 사시던 대로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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