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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패모 Apr 11. 2023

하얀패모 이야기 38-개똥철학

개똥철학

<개똥철학>

녀석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기발"이다. 생각이 늘 독특했다. 사물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눈이 남들과는 달랐다. 나무 한 그루를 봐도 우리들이 그 색채나 질감 등을 관찰하는데 반해 녀석은 거기서 신학적 사고를 뽑아냈다. 아직 잎을 피워 내지 않은 초봄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녀석은 신의 위대함과 마주했고 겸허해지기도 했다. 

“OO.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다.”

“그걸 이제 알았냐? 멍청이.”

“하하하. 맞아. 정말 멍청해. 어떻게 이걸 이제 깨달았을까? 매일 보던 건데 말이야.”

“뭘 매일 봐?”

“저기 나무들과 가지들을 봐. 우리가 걷는 각도에 따라 입체 면이 수 천 개도 넘게 달라진다? 어떻게 하나님은 입체라는,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개념을 창조해 내셨을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그런 개념을 생각해 낸 너도 보통은 아니다. 쳇.”

나는 녀석에게 겸허히 배우기보단 그런 녀석에게 늘 질투가 났다. 


다음은 녀석의 그런 면을 볼 수 있는, 녀석의 글의 일부이다.


[믿음에 대한 철학적 해석]

인간은, 특히 기독교는 무지를 자각해야 한다. 이 사회가, 이 교회가 얼마나 인위적이고 인공미가 넘치는가? 우리가 모든 가식과 인위적인 모든 것을 거짓으로 인정할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지 속에 살아왔는가를 자각하게 된다. 그 무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분은 혁명가도 아니시며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 반동 세력도 아니시며 하나님 자체로 계신다. 

우리가 그분은 발견했다는 말은 우리가 그의 안에 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그분은 만날 때 모든 거짓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거짓과 참이라는 개념 자체도 거짓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참 하나님 그분을 알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편견을 깰 수 있고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진실되이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시간의 존재를 믿는다는 이야기이다. 시간 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3차원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알게 되어 진실하고 소중한 것이 된다. 시간이 나의 인식을 지나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랑, 행복, 미움, 질투 등등.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안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소중히, 누구보다 소중히 다룰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믿음이다. 철학적으로 해석한. 

-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한 바보가. 



기발함은 진지함과 늘 함께 갔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친구들과 주말이나 방학 때면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를 하다가 식사시간에 매점에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녀석은 그때 많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우리를 열심히 토론했다. 다른 친구들이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받는다는 개인 구원적 복음에 열광할 때 녀석은 늘 애타게 복음을 삶에서 보고 싶어 했다. 녀석은 ‘왜 사회는 변하지 않는 거지?’,‘왜 학교는 변하지 않는 거지?’, ‘쓰레기 같은 스포츠 신문은 왜 우리 학생들 옆에 항상 있는 거지?’, ‘이런 것은 과연 복음과 무관한 일일까?’ 등과 같은 우리 삶과 신앙의 괴리에 관한 고민이 많았고 우리는 늘 이런 문제로 함께 씨름을 했다. 우리는 때론 현실 앞에 무력한 우리 자신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도무지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아파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녀석은 한 각오를 했다. 친구들을 동원해서 OO 지역 일대 신문 가판대 상인들을 상대로 가두시위를 결심한 것이다. 피켓에 쓸 내용은 이랬다. 

“스포츠 신문을 팔지 맙시다. 그러면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겁니다.”

피켓을 만들어 그들 앞에서 매일 행진하며 여리고 성을 돌듯 돌아보자는, 정말 엄청난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일정 기간 동안 시험을 하자고. 허나 매일 함께 교정에서 은혜로운 얼굴로 찬양을 하던 친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늘 녀석의 그런 이야기에 지쳐 있던 아이들은 아예 귀를 막고 나가 버리기도 했다. 의외로 여린 그 녀석은 깊이 상처를 받았고 급기야 내 앞에서 눈물을 비쳤다. 

“내가 애들을 많이 힘들게 하나 봐."

애들 눈치는 보이고 녀석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나는 정신이 없었지만 일단 녀석 쪽이 급해 보였다. 

“그렇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안이니까 그렇겠지."

“그러니까 애들이 힘든 거잖아.’

“하기 어렵다는 거지 네가 틀리다는 게 아니잖아. 옳은 걸 가르쳐 줬는데 지들이 못하는 거면 할 수 없는 거지. 그냥 선택을 한 것뿐이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그럼, 피켓 만들려면 합판도 잘라야 되고 글씨도 써야 되고 또...... 등등 그게 쉽진 않을 거지."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런 건 내가 혼자 해도 돼.”

“어떻게 너 혼자 하냐. 글씨도 엄청 못 쓰는 자식이."

“쳇. 나도 알아. 애들이 단순히 이 일 때문에 나를 피하는 게 아니라는 거."

“널 피하는 게 아니래도. 그 무슨 황당한 피해 의식이야?"

“이젠 아무도 내 얘기 들으려 하질 않잖아. 내가 힘들 게 하니까. 그러려는 의도는 아닌데......"

“그럼 그냥 놔둬. 그렇게 살라고 하면 되잖아. 저것들은 교회당에서 기도만 하고 살려나 부지. 원래 저것들이 거-룩하잖냐. 우린 또 그렇겐 못 살지. 우린 좀 ‘요나’ 스럽잖냐. 우리 목소리도 좀 내고 말이야, 응? 아 그게 사는 거지. 하나님도 쟤들이 얼마나 심심하시것냐, 너무 말을 잘 들어서. 근데 너 정말 그거 할 거야? 너랑 나랑 둘만 하면 힘으로 밀려서 매만 맞고 어디로 끌려가는 거 아냐? 피켓이 두 개밖에 없으면 너무 초라하겠다. 양손에 한 개씩 두 개 들까?"

“풋-. 관두자.”

“왜? 하자고! 그게 믿음 아냐? -‘그딴 더러운 신문 안 팔아도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매상을 줄지 않게, 아니, 더 올라가게 해 주실 겁니다.’- 으아~ 죽인다 정말.”

“너까지 비웃냐?”

“감동한 거잖어! 걍 하자고 우리 둘이. 우르르 다 끌고 나가면 대수냐 뭐?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지.”

“......”

녀석이 등을 돌리고 말없이 천정을 보며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취학 전후로 나한테 맞아서 우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남자아이가 내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이 덩치 큰 녀석이...... 나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녀석이 민망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대로 옆에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엉겁결에 그냥 아기를 다루듯 녀석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었다. 녀석은 그런 내가 우스운 듯 울다 웃다 그랬다. 잠시 후 녀석은 심호흡을 했다. 진정이 되었다는 뜻이다. 녀석이 추스르는 것을 보고 나는 일어섰다. 도서관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서 열람실에 가방이 그대로 있어 조마조마했던 차였기에 녀석이 간발의 차로 진정되어 다행이었다. 

“너 웃었지? 됐지? 그럼 나 가방 가지고 온다.”

급히 돌아 서며 뛰려는데 녀석이 내 소매를 잡고 더없이 민망하고 행복한 얼굴로 팔을 벌리며 물었다. 

“야......”

“아, 왜. 아 급해!”

“한 번만 안아 보자”’

“여자 앞에서 한 번 울더니 아주 미쳤구나! 우쒸! 이 죄는 갔다 와서 죽음으로 물어주마!”

나는 녀석의 코앞에 주먹을 쥐어 한 번 들이대고 냅다 뛰었다. 

“야, 조심해!”

“닥쳐! 이 은혜를 웬수로 갚는 놈아!”

“탁탁탁”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계단을 올랐다. 열람실 문이 잠길까 봐...... 가방을 못 꺼낼까 봐...... 녀석의 그 해맑은 미소가 따라올까 봐...... 나를 향해 팔을 벌린 녀석의 얼굴은 괘씸하게도 참 맑았다. 


[십자가]

서울의 밤하늘을 봅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붉은 십자가들

그리고 저 멀리 남산타워 불빛


붉은 십자가들은 보며 생각합니다. 

과연 저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구속하려고 

매달렸던 그 십자가인가? 하고 말입니다. 


일요일 저녁. 많은 사람들이 저 십자가 아래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구세주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그런데, 반짝거리는 저 십자가 말고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십자가를 가지고 

매일 그 십자가 아래로 모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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