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생존기
처음에는 그놈이 바퀴인 줄 꿈에도 몰랐다. 손으로 때려잡는 과감함도 그때까지는 갖추고 있었다. 내 부엌에서 바퀴를 처음 발견한 건 아마 5월 초였던 것 같다. 우즈벡에 와서 토실토실 살이 오른 나새끼를 다이어트 시키려고 매일 ABC 주스를 갈아 마시기로 마음먹었던 시기다. 저녁마다 사과, 비트, 당근을 썰며 내일의 쾌변을 빌던 와중에 크기가 쌀알 만한 낯선 벌레 한 놈이 뽈뽈 조리대 위를 지나갔다. '창문 열어놔서 그런가?' 날벌레 하나가 들어왔구만. 별 생각 없이 손으로 찰싹 때려 죽였다.
솔직히 나는 바퀴의 외양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십년 전 동남아에서 봤던 엄지 손가락 만한 왕바퀴만 기억할 뿐, 일상적으로는 그저 살충제 겉면에 그려진, 큼직하고 몹시 비호감스럽게 뒤집어져서 여섯 다리를 모은 채 죽어가는 모습만 봐왔던 것이다. 그 놈들의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이론적인 지식이었을 뿐, 나는 이 흑미 한 톨 만한 녀석이 바퀴일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러워서 덧붙여 보자면 나는 진짜 억울하다. 주관적이긴 해도 나는 거의 청소왕에 가깝다. 친구 없고 시간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나는 집안일을 거의 취미처럼 즐기고 있었다. 바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항상 있었기에 바닥에 음식물이 떨어지거나, 부엌이나 욕실이 축축하게 남아 있는 꼴은 평소에도 절대 용서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퀴의 발견은 곧 자존심이 산산조각나고, 막연하게 도사리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일대사건이다. 그 놈이 바퀴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 일주일 가까이 걸렸다. 처음부터 "으으ㅏ아ㅏ아ㅏ!! 바퀴다!!!!" 하고 박멸을 개시했다면 비교적 초반에 사건을 진압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내 주방에 바퀴가 나타날 리 만무'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실을 외면한 게 아니라 부정했기 때문에 바퀴 놈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주방에 충만해질 때까지 무감각하게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그 놈이 바퀴라는 사실을 소스라치게 깨닫게 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여느 때처럼 ABC 주스를 만들려고 캄캄한 주방에 들어가 불을 켰을 때, 조리대 위를 산책하던 바퀴 두 마리가 사사사삭- 하고 이곳저곳의 틈으로 숨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것은 내가 생각하던 날벌레 따위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불빛이 좋아 어찌어찌 우리 집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불우한 바깥 벌레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활동하다가 인기척에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그 움직임은.. 바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