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생존기
바 퀴 전쟁기가 어느덧 마지막 편입니다
퀴 블러-로스 박사님 덕분이지요
벌 써 이별이라니 아쉽지는 않고요
레 릿고 레릿고...
우리 집에서 바퀴가 종적을 감춘지 보름이 넘었다.
날씨는 더 더워졌고, 바퀴들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그들만의 거대한 제국을 이루어 우글우글 잘 지내고 있을 테지만 현재로서는 우리 집이 그들에게 매력적인 부동산으로 어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온전한 자유를 되찾았다고 믿지는 않는다. 여전히 우리 집은 각종 배관과 전선이 드나드는 곳마다 벽에 필요 이상으로 큰 구멍이 나 있고, 잘 닫아놓았던 창문도 24시간에 한두 번씩 자동으로 텅! 하고 열리며, 부엌장이나 화장실 욕조 밑부분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곳은 얼마나 허술하게 마감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의 이론에 의하면, 마지막 '수용(Acceptance)' 단계에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인정하며, 사건과 감정을 분리하게 되고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는데, 사실 박사의 이론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죽음에 대한 반응을 분석한 것이므로 내가 겪은 감정들은 엄밀히 말해 이 이론을 적용하기에 올바른 예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바퀴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대략 유사한 감정 단계를 겪은 것에 대해 좀 궁금해지기는 한다. 나는 무엇에 대해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려고 애쓰고, 우울에 빠지고, 결국은 받아들인 걸까? 바퀴를 사랑했을 리는 없고 그 반대일텐데, 그럼 바퀴의 여집합. (바퀴)c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던 건 '바퀴lessness'였다. '바퀴less 우리집'에 대한 강한 믿음과 기대. 나는 노오력으로 그 가치를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믿음과 이별했다. 바퀴 예방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열심히 청소하기, 약 놓기, 약 뿌리기. 이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였거늘, 진정 내게 바퀴를 보내시는 게 천명天命이거든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소서, 최선을 다해 죽여 드리리. 신에게는 아직 한 통의 겔 바이트가 남아 있나이다.
바퀴와의 한 바탕 전쟁 이후 없던 버릇이 생겼다. 집안에서도 발바닥만 쳐다보고 다니는 것. 이것마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이고 다닐 거다. 바퀴벌레릿고.. 벌레릿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