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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아바 Jun 12. 2020

슬기로운 산후조리 생활에 대하여

D+81 / 2020. 6.12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냐고 묻는다면 아니지만 출산 전후 나름 다사다난했던 일들을 경험하며,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시급한 일들에만 집중하고자 마음먹었기에 당분간 이 곳에 글을 쓰는 것을 멀리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당분간 몸조리에만 집중해야 마음먹었던 건, 조리원 퇴소를 4일 남긴 시점에서 제왕절개 했던 부위에 염증이 생겨 다시 수술부위를 재수술했을 때였다. 다행히 피하지방이 녹은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어찌 되었던 결국 몸에 다시 칼을 댔다. 조리원에서도 모유수유 연습부터, 독립출판 프로젝트 마무리,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 폭풍 검색 등 마음 편히 쉬지 않고 몸을 놀렸기 때문일까. 겨우겨우 회복되어가던 몸이 다시 원상 복귀되는 경험은 끔찍하고 우울했다.


사람들은 의외로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을 잘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게으른 한량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은 뒤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다소 강박적으로 일을 찾아 해치우면서도 끊임없이 다음 할 일을 생각해냈다. 다시 반복되는 배의 통증을 깨닫고 MUST TO DO인 '몸조리'와 '아기 돌보기', 독립출판 마무리'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잘 쉬었냐 묻는다면 글쎄요.)


본래 이 주제의 글도 '조리원-친정-산후관리사-남편의 출산휴가-나홀로 육아 시작' 순으로 시리즈 연재를 기획(?)했지만 정말 일을 만들어하고 있다는 생각을 깨닫고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계획을 접었다. 정보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너무 강박적으로 일처럼 글쓰기를 하면 오히려 소소한 지금 현재의 이야기들을 놓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의 산후조리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은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왔고, 무엇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종종 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산후우울증이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내가 몸과 마음이 지쳐 나와 아이에게 안 좋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최대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아보자는 결심을 했다.


나는 조리원 2주, 친정 한 달, 산후 관리사 3주, 배우자 출산휴가 1주일을 이용하여 총 77일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이를 돌보며 산후조리를 했다. 지금은 아이를 나 홀로 돌보기 시작한 첫 주가 마무리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몸은 정말 많이 회복되었고, 혼자 아이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아이와 직접 대면하며 엄마가 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아픈 몸을 돌보고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어버린 내가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데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지난 나의 산후조리 생활을 돌이켜보며 간략하게 느낀 점 등을 남겨 볼까 한다.


1. 조리원

산후조리원에서는 우선 무엇보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중요하다. 보통 아이들은 100일쯤부터 '100일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통잠을 자기 시작한다. 그 말 즉슨, 엄마도 100일까지는 통잠을 자기 어렵다는 것이다. 끼니마다 나오는 잘 차린 식사, 간식, 쾌적하고 넓은 객실, 마사지 등 모두 비싼 비용에 걸맞은 좋은 서비스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가장 좋은 서비스는 '저녁잠'과 '가사노동 해방'이다. 이후 친정집이나 남편의 도움을 받을 때도 새벽잠을 깨워가며 아이를 부탁한다는 건 쉽지 않으니까.


더불어 모유수유에 대하여 엄청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조리원 생활은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딱 한 가지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가슴 마사지를 해주시는 분 중 한 분이 모유수유에 대해서 엄격한 태도로 조언을 자주 하셨는데, 지나 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덕분에 모유수유에 대하여 강박적으로 바지런을 떨며 스트레스를 받았고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며 강행군을 계속했고, 결국 잘 아물던 상처를 재수술하는 일이 일어났다.


제왕절개 재수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오갔는데 그중 수유쿠션에 의한 잦은 압박 등으로 상처부위가 자극이 갔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튼 재수술 이후 항생제 복용과 수술부위 회복을 위해 며칠 동안 모유수유를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쓸 데 없는 조언이고 불쾌한 경험이었다. 사실 난 남편 직장 동료로부터 조리원에서 모유수유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이 회복에 전념하면 된다는 조언을 이미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 재수술.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몸에 눈에 띄는 수술 자국이 늘어난다는 슬픔과 다시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엄마들, 조리원에서는 그냥 걱정 없이 무조건 쉬어도 된다. 제발.


관리사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기. 특히 재수술로 병원진료를 갈 때 잘 돌봐주셔서 감사했다.
조리원에서 진행된 본아트 사진. 코로나 때문에 완전 무장으로 진행된 촬영. 그리고 끼니 때마다 제공되던 7첩반상...그립다.



2. 친정

친정에서의 한 달은 몸도 쉴 수 있어 좋았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많이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곳 타지 생활을 했단 내가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었다. 운 좋게도(?) 코로나 덕분에 학교에서 근무하던 엄마의 퇴근시간이 빨라져서 더더욱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분명 나와 아기를 케어하던 엄마부터 몸져누우셨을 것이다.


조리원처럼 알아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없지만 엄마 아빠와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남편 없이 홀로 지내야 했던 조리원과 달리 아이를 예뻐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동안 참 많이 행복했다. 타지 생활을 하며 그동안 갖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은 나에게도 많은 추억이 되었다. 물론 엄마표 음식으로 조리원 생활 동안 빠진 살이 도루묵이 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커가던 아가



3. 산후관리사

산후관리사에 관해서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이 집에 오는 것이 달갑지도 않았고, 경우에 따라 본인과 잘 맞지 않은 산후관리사가 올 경우 오히려 곤란한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대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매우 만족하는 서비스였다. 올해부터 전 가정에서 산후관리사에 대한 비용 일부를 바우처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1주일부터 3주일까지 신청할 수 있었는데 나는 무조건 3주를 선택했다. 나중에 연장을 하고 싶어도 바우처는 연장 신청이 불가하기 때문에 신청할 때부터 잘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비스를 취소하는 산모들도 꽤 많다고 했다. 나도 고민이 많았지만 관련하여 업체 측과 상담을 통해 취소하지 않고 서비스를 진행하였다. 다행히도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신 이모님이 오셔서 걱정 없이 케어를 받을 수 있었다.


이모님과 함께 3주 동안 생활하며 신경 쓴 것은 최대한 서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낯선 분이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생활을 한다는 건 꽤 부담이었기에 빨리 친해져서 서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굉장히 낙천적이고 친절한 이모님이 오셔서 아기도 함께 돌보고 수다도 떨며 심심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앞으로 생활할 공간에서 아이를 돌보는 동안 많은 육아조언과 살림을 편하게 하는 여러 팁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생활에서도 이모님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마침 근무하시는 마지막 날이 남편의 생일이어서 당분간 쉽게 할 수 없을 둘 만의 데이트도 즐길 수 있었고. 본격 육아 생활에 돌입하기 전 마지막 족집게 강의를 받는 기분이었다. (용인지부 하트 맘 케어 배현자 이모님 감사합니다. ^^)

각종 밑반찬부터 뚝딱뚝딱 만들어주셨던 이모님 덕분에 10첩반상을 먹기도 했다. 소아과도 함께 가주시고 남편의 생일 손수 지은 팥밥도 차려주셨던 이모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4. 배우자 출산휴가

2020년부터 배우자의 출산휴가가 10일로 늘어났다. 다행히(?) 남편은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모두 쓸 수 있었다. 3일은 제왕절개로 입원한 나의 병간호, 그리고 나머지 7일은 산후관리사 서비스가 끝난 다음 주에 썼다. 남편의 출산휴가 기간 동안 우리는 대대적인 대청소를 진행했다. 주변에서 받아온 육아용품으로 집은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둘이 살 때는 깜깜했던 더러운 것들이 눈에 몹시도 거슬렸기에. 정말 일주일 동안 청소만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를 함께 돌보며 끈끈한 동료의식으로 하나씩 숙제 같았던 짐 정리와 청소를 무사히 끝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혼자 애를 보거나 휴식을 취해야 하는 주말에 진행했다면 정말 심신이 지쳤을 것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 배우자 출산휴가로 집안을 재정비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출산 후 지금까지 느낀 것 중 하나는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며 하는 육아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부족한 잠과 고단한 몸을 이기며 즐겁게 육아를 하고 있다.

아기 목욕은 남편이 전담하고 있다. 아기를 가장 맘 놓고 맡길 수 있는 최고의 육아 동지



5. 나 홀로 육아 돌입

퇴근 후와 주말, 남편이 많이 참여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기를 집에서 홀로 돌보아야 한다. 두려웠던 시기가 왔지만 그래도 비교적 순둥한 아가와의 시간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다. 예전보다 훨씬 집안일에 바지런을 떨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몸이나 마음이 고장나진 않았다.


일단 집안일, 특히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청소와 빨래는 절대 미룰 수 없고 모유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식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며 새로 장만했던 가전제품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리는 빨래로 건조기는 정말 필수다. 물걸레 기능이 있는 로봇 청소기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구석구석 꼼꼼하게 치울 순 없지만 아이가 있는 주 생활공간은 확실히 큰 품을 들이지 않고 매일 청소할 수 있으니 만족한다.


식사는 점심은 주말에 미리 만들어두었던 볶음밥, 나물 비빔밥과 같은 음식들로 간단하게 차려먹고 저녁은 반조리 식품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에어프라이를 이용하여 각종 생선과 고기 요리는 정말 손을 크게 쓰지 않고도 만족스럽게 먹고 있다. 유기농 식품 새벽 배송이 가능한 오아시스 앱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 산후관리사 이모님께서 마지막까지 '새댁, 반찬은 사 먹어!'라고 신신당부하셨던 말씀을 잘 따르고 있다.


수유와 관련된 설거지 외에 모든 설거지는 퇴근 후 남편이 전담하고 있다. 당장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가사노동은 은 남편과 함께 하고 있다. 나를 아껴주고 걱정하며 함께 육아에 힘쓰고 있는 남편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육아에서 남편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정말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무척 즐겁고 행복하지만, 아직은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는 처지에 가끔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런 마음을 어젯밤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엄마에겐 아이 외에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소통이 그립다고. 그리고 남편과의 협의 끝에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즐겨 가던 서점의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소규모 모임이고 마스크 착용 필수로 진행된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의 정신 건강도 못지않게 소중하기 때문에 숨통이 트일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나 홀로 육아에서는 노동력의 적절한 안배와 배우자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힘들고 지칠 때가 있더라도 점점 더 귀엽고 예뻐지는 아가를 보면 짜증이 사르르 녹는다. 다 예쁘지만 역시 자는게 제일 예뻐.


아직 생후 80일이 갓 넘은 아가를 키우는 초보 엄마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지난 나의 산후조리 생활을 정리해보았다. 나를 포함한 엄마들 정말 파이팅이다. 아이만큼 소중한 나도 잘 돌볼 수 있는 슬기로운 산후조리 생활되시길.


 

마무리는 팔불출답게 아가아가한 50일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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