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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진 Dec 24. 2021

메리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오픈 02

곧 크리스마스. 항상 이맘때는 설렘 가득한 느낌에 기분이 붕붕 뜨곤 했는데, 올해는 차분하다. 이렇게 나이가 먹는 것인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다. 유명한 케이크 집의 인스타그램은 모두 팔로우하면서 12월 초부터 케이크만큼은 기대했다. 그리고 거의 티켓팅 하는 것처럼 예약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기대하는 것은 나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마치 공장처럼 케이크를 만드는 일반 빵집, 그리고 빵집들 계정에 뜨는 '품절' 표시. 프렌차이즈 빵집 앞에 쌓인 케이크 상자들. 그렇다. 이 날이 모든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긴장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그랬다.




"예진아 혹시 그때 시간 되니?"

그 해 크리스마스는 평일이었다. 따라서 원래는 내가 일하지 않는 날이지만 특수한 날이니 사장님은 추가 인력을 구하셨고 오전엔 일정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승락했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아무 생각 없었다는 점이. 일해도 된다고 했을 때 사장님께서 정말 고마워하셨다는 점을... 그냥 허투루 넘기면 안 된다.


도착한 빵집은 마치 빵집이 아니라 택배 물류 창고 현장 같았다. 내가 일했던 빵집은 카운터와 빵 있는 공간 옆에 테이블 등이 있는 '카페 겸용'이었는데, 그곳을 가득하게 케이크가 채웠다. 당연히 실내에 케이크를 보관하니 실내 히터는 모두 끄고 있었는데, 하나도 춥지 않았다. 왜냐면 카운터와 그곳을 계속 이동해야하니까!


프렌차이즈 빵집의 케이크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가게에서 만든 종류고 하나는 본사에서 갖고 오는 것이다. 기사님도 안쪽에서 하루종일 생크림 돌리시고 샌딩하시고 데코하시고.. 아르바이트 생은 만들어진 케이크를 쇼케이스에 넣어야 된다. 그렇게 큰 쇼케이스 첫 번째 줄은 본사에서 온 케이크가 있고 나머지를 빵집에서 만든 케이크가 채운다. 손님이 본사 케이크를 선택하시면 카페에 있는 케이크 갖다 드리고, 빵집에서 만든 케이크 고르시면 바로 빼서 드리면 된다.


이때 특히 더 정신이 없던 이유는 손님들이 케이크만 구매하시지 않는다는 거다. 빵만 사는 분, 빵도 사는 분.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은 분업이 필수였다. 한 명은 포스 담당. 한 명은 빵 포장 담당. 한 명은 케이크 전달. 사장님은 옆에서 본사 케이크 전해주시고 정말 사람이 가득했다. 줄 서서 케이크를 사가는 사람들을 보며 케이크는 크리스마스 제철 음식인가 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순대 국밥이 떠오른다. 중간에 사모님이 점심으로 순대국밥을 포장해주셨는데 돌아가면서 먹던 그 순대 국밥이 참 따뜻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먹고 도우려는 사람과 조금만 더 쉬라며 말리는 주변인들. 사실 정말 힘들었는데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같이 이렇게 일하는 날이 작은 이벤트 같기도 했다. 초 미리 포장하면서 다른 언니, 사모님과 수다 떨었던 게 생각난다.


가족 단위로 와서 케이크 사던 사람들, 혼자 와서 전화하면서 고르던 사람들, 그냥 가장 무난한 게 뭐냐고 물어보시던 분. 크리스마스를, 특히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 달랐지만 특별한 날 특별함을 주기 위해 빵집에 들린 기대감은 모두 같았다. 일 끝나고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전에 다시 빵집에 들려 나도 다른 손님들과 같은 기대감을 갖고 케이크를 샀다. 


먹으면 없어지지만, 주식이 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날 그 순간을 꾸미기 위해 필수적인 케이크. 케이크를 고르는 그 시간의 설렘이 그대로 이어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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