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을 뛰어넘는 교육
라오스에서 첫 번째 집
라오스에서 두 번째 집
2006년 우리 가정은 라오스에 가게 되었다.
2005년에 한국정부 EDCF 차관으로 라오스의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에 있던 대학을 새롭게 대학 캠퍼스를 짓고 학과를 신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에 대외협력 코디네이터 역할로 함께 참여하면서 라오스를 몇 차례 다녀오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그곳에 가서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길이 열렸다.
당시 과기부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개도국 과학기술지원단(KICOS)’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세워진 대학에 가서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싱글이 아니고 아내와 5학년이 된 아들이 있었다.
라오스 대학이 있는 루앙프라방이라는 곳은 라오스에 옛 수도이기는 했지만, 아들이 가면 현지학교를 다니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국제학교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그곳에 계신 한국인 가정은 학교가 없기 때문에 자녀는 태국에서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우리도 나는 라오스에 있고 아내와 아이는 태국에 있는 방법도 생각하고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모두 같이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들의 교육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방법이 있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확신은 우리 아이 또래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내는 시간 자체가 가장 유니크한 인생이 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강제로 데려갈 수는 없어서 어떤 조건이면 함께 가겠는지 물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의외로 “2층 집에 살면서 개를 키우는 것”이었다.
처음 1년간 있었던 집은 2층 집이었고, 주인집 개가 있어서 아이가 원하던 조건을 충족하였다.
라오스에 와서 첫 3개월은 서로 정착을 하느라 아이도 아무 공부도 하지 않고 신나게 놀았다.
3개월 즘 지난 후 부모님이 라오스에 방문하셨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현지 생활과 맡은 일에 즉응 하느라 잘 못 느꼈는데 부모님은 마냥 놀고만 있는 손주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지셨던 것 같다.
부모님을 모시고 부모님의 지인을 만나기 위해 수도인 비엔티엔에 방문을 하였다.
그곳에 한국 선교사님이 마침 미국의 홈스쿨 교재로 공부를 하는 국제학교를 새로 세우셨다.
그곳에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학교는 마치 우리 아이를 위해 때마침 생긴 학교 같았다.
우리를 이야기를 들으시고 먼저 2달만 직접 와서 공부를 하였다.
그 이후에는 집에 교재만 받아 가지고 와서 공부를 하도록 편의를 봐주셨다.
또 초반에는 사촌 동생이 몇 개월을 와서 함께 살면서 아들의 학업을 도와주었고, 그 이후에 필리핀 선생님이 우리 집에 함께 살면서 아이의 공부를 봐주었다.
한국에서 5학년이 되었을 때도 이미 공부 경쟁에 주눅이 들어 있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홈스쿨을 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사라지자 아이도 엄마도 서로의 관계도 너무 편해지고 좋아졌다.
아들은 이곳에 와서 유럽 미국 등에서 온 아이들과도 함께 친해지기 시작하며 자기도 모르게 국제적인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지금 너 학년에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살아 본 아이는 네가 유일해. 너의 그 유니크한 시간이 앞으로 네 인생에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거아.”
그곳에서 3년 정도 홈스쿨을 하던 아들은 아버지 친구분이 미국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시던 크리스천 사립중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연히 우리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 아이는 내가 키울 테니 보내라.”라고 말씀하셔서 중3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미국에 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 사시고 계셨는데, 아들이 부모님 댁에서 다닐 수 있는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게 되어서 아들은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으며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대학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우리가 라오스를 갈 때 홈스쿨 학교가 생길지도, 또 이렇게 미국으로 가서 교육을 받게 될지도 우리는 전혀 몰랐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우리의 라오스를 향한 도전이 무모한 것 같았지만 우리를 위해 예비된 길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인도네시아 가서 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어려서 동남아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너무도 치열하다.
하지만 그 치열함 가운데 아이들 각각의 개성과 비전을 꿈꾸게 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닌 것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가 했던 경험을 모두 동일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도전은 우리 모두의 삶이 유니크한 삶이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부르심이 있고 각자의 독특함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 교육 대책도 없이 라오스로 향한 걸음이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가는 출발점이었다.
요즘도 이따금 자녀들과 함께 교육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함께 세계 여행을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본다.
그러한 도전은 그 가족 전체를 세상의 시스템과 경쟁에서 탈출하게 하는 여정이 될 것을 믿고 응원한다.
‘유니크하다.’는 단순히 특이하다가 아니라, 독특한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각자의 삶이 유니크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정말 빛나고 행복하려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명을 향해 나가며 각자의 독특한 빛을 발할 때이다.
세상의 경쟁 시스템은 우리 각자의 독특함과 각자의 소명을 말살시키기 쉽다.
자녀의 인생이 소중할수록 그들의 소명과 독특함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