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경쟁이 아닌 방향 점검할 때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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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경쟁이 아닌 방향 점검할 때



도로에 제한속도가 있는 이유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차에 브레이크 고장 난 채 질주하는 것은 자살 행위이자 살인 행위다.

그런데 점점 빨리 지는 우리 삶의 속도는 이미 제어 불가능한 질주 같다.



1989년 출간된 하웃츠바르트의 〈자본주의와 진보사상〉란 책에서 이런 경고를 했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동력을 낭떠러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로 표현했다.

그는 ‘이 기차는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 지상주의를 유일한 목표로 삼고 맹렬히 질주합니다. 이 사상은 곧 양적 팽창만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입니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기차에 탄 사람은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종착지가 어디인지, 이 속도가 지속 가능한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승객들은 기차 안에서 제공되는 물질적인 풍요에 만족하며, 기차가 가져다주는 단기적인 이익을 누리는데 집중한다.

그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기차를 멈추거나 방향을 틀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기차가 결국 도달하게 될 곳은 생태계의 파괴,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 그리고 인간성 및 도덕적 가치의 황폐화임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30여 년 전을 생각하면 본격적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지기도 전이다.

이제는 정말 자고 나면 어제의 기술이, 몇 년 전의 경험이, 당연하던 가치가 혼돈에 빠지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 핸드폰, 온라인 쇼핑, 디지털 금융, 새벽 배송 등 우리를 편리함에 열광하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때론 두렵다.

최근에 수많은 중독 현상도 이미 제어 기능을 상실해 가는 우리의 자화상과 같다.

지금은 대부분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은 있어도 발전의 속도를 제어할 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에도 맹목적인 질주만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함께 달리던 사람들이 넘어지고 멈추면 서로 돌아올 관심마저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 관심을 잃어버린 채 맹목적으로 달리는 그 사람은 어쩌면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타고 달리는 기차가 브레이크도 고장 난 채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정말 속도 경쟁을 멈추고 우리가 가는 길이 정말 가야 할 길인지 돌아보며 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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