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노인 돌봄에 대한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그 돌봄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보면 ‘결국 저것이 나의 미래’임을 생각할 때, “나는 저렇게 요양원에서 가족들과 떨어진 채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을까?”하는 스스로 하게 되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고된 노동, 혹은 내 삶을 갉아먹는 무거운 짐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삶의 마지막을 지켜본 전계숙 작가는 그녀의 저서 《돌봄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를 통해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녀에게 돌봄 현장은 단순히 환자를 수발하는 곳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역사를 마주하고 인생을 배우는 학교였다.
지금 병상에 누워 숟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는 노인들을 보며 우리는 무심코 '무력한 존재'라고 낙인찍기 쉽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처럼, 그들은 한때 누군가의 태산 같은 아버지였고, 자식들을 위해 억척같이 삶을 일궈낸 어머니였으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들이 지금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이 삶을 태만히 살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가족과 세상에 쏟아부은 훈장과도 같은 결과다.
과거 우리 설화 속 '고려장'은 늙고 병든 부모를 산에다 버리는 비극적인 풍습으로 전해진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을 폐기물처럼 취급했던 야만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고려장의 야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시설에 부모를 맡겨두고 찾아오지 않는 것만이 현대판 고려장은 아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사회적 비용'이나 '짐'으로만 치부하며, 그들의 존엄을 지워버리는 차가운 시선이야말로 정신적인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오래 사니 민폐다.", "자식 발목 잡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는 사회에서, 노년의 삶은 축복이 아닌 형벌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는 결국 "돌봄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미래"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예비 노인이며, 예비 환자다. 지금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라면, 먼 훗날 우리가 약해졌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 역시 '귀찮은 짐' 취급받는 말로일 뿐이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인간적인 존엄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 곁의 약자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정성껏 돌보는 행위는 단순히 그 사람을 위한 봉사가 아니다. 그것은 훗날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나 또한 버려지지 않고 따뜻한 손길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쌓는 적금과도 같다.
작가의 말처럼 돌봄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병든 육체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부모 세대가 우리를 헌신으로 키워냈듯, 이제 우리가 그들의 마지막을 존엄으로 지켜내야 한다. 그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는 고려장의 공포에서 벗어나, "당신이 있어 다행이었다"라고 말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