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째즈와 함께하는 야밤 달리기

노래가 데려온 그날의 기억

by 피자치킨피치


나는 열두 살 때 고아가 되었다. 뱃일하시던 아버지는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셨다. 어렵게 홀로 우리 두 형제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내가 5학년을 마칠 무렵 새벽 출근길에 버스에 치여 돌아가셨다. 초겨울, 오늘 같은 날씨였다.


오늘 하루는 한 것도 없이 훅 지나갔다. 뭉미는 아침부터 대학원 동기들이 주관하는 기후 프레스큰지 뭔지를 다녀왔고 나는 그동안 집안 곳곳 어젯밤 파티의 흔적을 지우느라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랐다. 정신없이 바쁜 틈바구니 속에서 피치는 계속 그답지 않게 보채고 기운 빠진 모양을 보이더니 오후에 들른 병원에서 덜컥 독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차라리 확진인 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피치는 수액을 맞고 나자 활기가 돌았다.


저녁을 지어먹고 설거지를 하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이대로 월요일을 맞이하기엔 어쩐지 아쉬워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양말만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에는 달릴 때 아무것도 걸치는 게 싫어서 애플워치만 달랑 차고 뛰었었는데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어폰을 챙겼다. 휴대폰 없이 애플워치만 찼더니 저장된 노래가 달랑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조째즈의 ‘모르시나요‘.


달리기에 축 처지는 발라드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오늘 밤 풍경과 이 노래는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집에서 안양천까지 가는 길, 목동 단지 아파트 사잇길은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낙엽으로 가득했다.


사위는 컴컴한데 가로등 불빛이 닿는 곳곳마다 아직 물러지지 않아 바삭한 낙엽이 이불처럼 잔뜩 쌓여있었다. 낙엽은 카펫처럼 푹신했지만 동시에 미끄러워 위태롭기도 했다. 발효된 플라타너스 잎사귀에선 침 냄새가 났고, 은행나무 잎사귀 사이엔 툭 터진 은행이 진득한 지린내를 풍겼다.


그래, 딱 이런 날이었다.


찬바람 불어오니
그대 생각에 눈물짓네
인사 없이 떠나시던 날
그리움만 남겨놓고


노래의 첫머리를 듣는데 울컥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면 학년말 알뜰 바자회를 하네 장기자랑을 하네 하며 책상을 모아 붙여놓고 그 위에서 춤연습을 하느라 한창 바빴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네 사실은 네가 두 번째로 좋았네 하는 진실 게임에 가슴 설레던 그런 날. 그날도 수업 끝나고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에 맞춰 장기자랑 발표 연습을 하기로 했었다.


수업 중간에 교실 전화를 받으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밖으로 불러내셨다. 무슨 일인지는 가서 얘기하자던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와중에도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향하는 빨간 티코 조수석에서 엉엉 울었었다.


나는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미성년자는 중환자실 면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깨너머로 들린 어른들의 말씀으론 어머니가 아주 퉁퉁 부어서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내게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앉아있지 않고 자지 않고 계속 병원 곳곳을 걸어 다니며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뿐이었다. 내 힘듦이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뜻 모를 주문을 계속 외우셨고, 교회에 다니는 외가 식구들은 주여 주여를 외치며 내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렇게 며칠,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고 작은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기로 했다. 두 분 모두 따뜻한 분들이셨지만 천륜이 그리워 눈물짓던 날이 참 많았다. 내가 울면 당신들 또한 울적해질 것 같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곤 했다.


그리워, 글썽이는 내 가슴속에
오늘 그대, 수천 번은 다녀가시네
나는 목놓아 그대를 소리쳐 불러도
그댄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네요

기다리는 나를 왜 모르시나요?
어느 계절마다 난 기다리는데
그저 소리 없이 울수록 서러워, 서러워
돌아와요, 나의 그대여. 모르시나요


아파트 사잇길을 지나 오금교에서 안양천에 접어들었다. 신정교를 지나는데 노래에 동화된 덕분인지 한참을 더 달리고 싶어졌다. 오늘은 한강을 찍고 올까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승진이를 만났다. 승진이는 다음 주 하프 대회를 맞아 실전 같은 연습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신정교에서 출발해서 방화대교를 찍고 돌아오는 21km 코스를 거의 다 뛰고 500여 미터만 남겨둔 때였다.


500미터를 함께 달리며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기분 같아서는 승진이를 붙잡고 소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월요일 출근을 앞둔 밤이라 말도 꺼내지 못했다. 결국 술 대신 이온 음료를 나눠마시고 바로 헤어졌다. 평소 질척이는 건 딱 질색이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인데, 오늘따라 고글 너머 울적함을 승진이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떤지 말도 안 하면서 상태를 알아맞혀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 걔가 무슨 점쟁이냐고.


조째즈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 덕분일까. 한 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이렇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기억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덕분에 노래 구절 하나하나를 음미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아린 가슴을 달래야만 했다. 인간은 가슴 아픈 기억을 시시각각 곱씹으며 살아갈 수 없기에, 아픔이 클수록 잘 포장해서 덮어버린다. 그러다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계기를 만나면 기억은 봉인을 해제하고 폭발하듯 튀어나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옛 기억의 범람으로 평정심을 잃었지만, 이제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찬찬히 정리해야지.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총알 같았는데 밤이 참 길다.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나 가을 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