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이야기

전세에서 드디어 내 집으로!

by 피자치킨피치


이사를 했다. 내 집이 생겼다. 선호도 높은 학군에서 살짝 벗어났고 비행기 소음이 제법 크며 지하철 역에서도 애매하게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긴 내 집이다. 비록 지분은 나와 아내, 그리고 은행이 각각 누가 더 많다할 것 없이 나누어 가졌지만.


이사를 마치고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이사, 쉬는 날이 되다’라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쓴 어떤 포장이사 업체가 생각난다. 그 직원은 정말 이사를 해보긴 한 걸까? 물론 오늘 나는 물건을 옮기는 데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민거리 투성이에, 난생처음 보는 사람 대여섯 명이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 몸이 힘들지 않다고 휴식이 되는 건 아닌데.


아침에는 나갈 집의 짐이 순식간에 하나둘 씩 사라지는 것이 마냥 신기해서 그럭저럭 마음이 편안했다. 생각보다 금방 짐을 다 빼고 전세 계약금을 돌려받고, 새 집에 잔금을 치르는 일련의 과정도 미리 해둔 메모를 따라 차곡차곡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특히 부동산에서 매도인과 마주 앉았던 순간은 짜릿한 희열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생천 처음 만져보는 액수의 돈을 잠시 만져봤을 때, 아니 만져봤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은 은행에서 출발해 잠시 내 통장을 경유해서, 다시 매도인의 통장으로 2차 경유를 마치고 다시 은행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나는 그 큰돈을 만져본 것이 아니고 ‘돈이 잠시 내 통장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어쨌든 잔금을 다 치르고 전 주인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을 때, 그래, 나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나도 이제 서울에 내 집이 있다. 그것도 좁은 집이 아니고 ‘국민 평수‘라 불리는 집이 말이다. 이제는 서러운 전세살이도 끝이다. 얼마 전, 임대인과 갈등이 불거져서 얼마나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던가. 2년 전세 계약의 막바지에 당연히 수용될 줄 알았던 세입자의 계약 갱신 청구권이 ‘임대인의 입주‘를 이유로 거부당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것도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집을 매도하기 위해서라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대응하면서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느냐 말이다. 일찍이라도 말해주던가, 계약 만료 2개월이 되어서야 나가라고 하니 당장 어떻게 집을 구할지 막막했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아냈고 비록 가격 협상에는 실패했지만 이사 날짜와 나머지 조건을 잘 맞추어 이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잔금을 치르고 법무사 비용과 중개수수료를 결제하고, 취득세와 교육세를 납부했다. 세금이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 그 큰돈을 카드로 납부할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일시적으로 카드 한도를 높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이왕이면 사용실적에 따라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카드를 골라두면 좋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내와 함께 점심 식사로 순대국밥을 먹었다. ‘얼큰이 순댓국에 청양고추를 빼고, 고기 많이‘, 무말랭이에 오징어젓갈을 섞어 무친 반찬이 입에 쫙쫙 달라붙었다. 전 주인께서 집을 일찍 비워주신 덕분에 아침부터 시작했던 입주 청소와 붙박이장 시공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고기에 새우젓을 찍어 먹으며 참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새 집에 짐을 넣을 때부터 점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먼저 주방 짐을 넣는 직원이 계약과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자칭 타칭 짐 정리의 달인이라는 그 사람은 계약 당시 본인이 직접 와서 정리를 책임지겠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혼을 쏙 빼놓더니, 정작 이사 당일에는 다른 일이 생겼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계약 불이행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 다른 직원들도 아니꼬워 보이기 시작했다.


허리를 삐끗했다며 비뚤어진 자세로 연신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고 불편한 걸음을 하던 [직원 1](안타깝긴 했지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말 끝마다 ’여긴 안 들어간다 ‘며 짐을 풀지도 않고 내려놓고 마는 [직원 2](원래 들어있던 공간보다 배는 넓어졌는데요?), 원래 붙어 있던 블라인드를 떼고 커튼 부착을 요구하자 진작 얘기했어야지 이미 짐이 많이 들어가서 부착이 어렵다던 [직원 3](애초에 물어본 적은 있었나요?), 말끝마다 힘들다 아프다 불만을 늘어놓으니 이건 뭐 내가 돈 주고 그들을 고용한 건지 그들이 나를 고용한 건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막내 격인 [직원 4]는 몇 마디 나눠보진 못했지만 짧은 대화 속에서도 기본적인 태도가 아주 호의적이었다. 자기가 있을 때 무거운 걸 잘 옮겨야 한다고, 불편해 말고 얼른 이야기하라는 그 자세가 퍽 고마웠다. [직원 5]는 자칭 ‘정리의 신‘ 직원 대신 온 분인데 ’정리의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방 살림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 주었다.


아직 뭐가 어디에 어떻게 들어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사를 마쳤다. 아직까지는 내 집 같은 느낌이 전혀 없고, 그냥 펜션이나 호텔에 잠시 들른 것만 같다. 정리할 것이 산더미같이 많지만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보려 한다. 한 번에 날 잡고 하기보다 살면서 불편한 점을 개선한다는 방향으로 정리 방향을 잡았다. 당장 음식을 해 먹으려면 내일은 주방부터 뒤엎어야 하겠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피로가 쏟아진다. 많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누가 더 큰지 키를 재어보는 중이다. 불안, 감사, 초조, 안도, 걱정, 사랑, 짜증, … 많은 감정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그래도 내 집 마련에 대한 성취감이 제일 장신이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