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눈물 모아 발리행 티켓

우리 가족 발리 여행기

by 피자치킨피치

신들의 정원 발리.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우아하고 신비로운 수식어가 붙었을까. 발리는 일찌감치, 그러니까 우리네 아버지뻘 되는 세대의 럭셔리 신혼여행 장소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 회사 부사장님께 발리 여행 계획을 말씀드리자 본인의 신혼여행지라며 평소 같지 않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들려주셨더랬다. 태국의 미친 물가 상승의 여파일까, 요즘 발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다시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저렴한 물가, 나름 괜찮은 치안, 천혜의 자연환경, 많은 즐길거리까지… 사실 미리 찾아본 글과 사진, 영상만으로는 그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다. 발리에서 우리는 어떤 추억을 쌓게 될까.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을 갈 때면 항상 대리주차 서비스를 받는 편이다. 대리주차 비용을 지원해 주는 신용카드에 친환경자동차 주차비용 50% 할인 신공을 받으면 공항에 차를 가져가서 12일이나 주차를 해도 편도 택시비보다, 아니 공항버스 비용보다 저렴하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남 잘 못 믿는 나는 일찌감치 글로브박스에 귀중품을 빼두었고, 주행 거리도 잊지 않고 찍어두었다. 명색이 공항 공식 대리주차인데 그렇게 도난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니, 세상에 믿을 곳 하나 없구먼.


우리의 해외여행은 언제나 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라운지 이용권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를 이것저것 쓰고 있기 때문이다. ‘라운지가 공짜래!’ 하며 신용카드를 벅벅 긁고 있는 우리를 보며 ‘과연 이게 합리적인 소비일까?’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행 전 라운지에서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술을 들이켜다 보면 깐깐한 소비 습관 체크는 어느새 뒷전이 된다. 그래, 이미 우린 중독된 것이다.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는 어째 마티나 골드보다 못한 느낌이다. 다만 술의 종류와 질은 훨씬 괜찮은 편이다. 꼬냑에 위스키에 맥주를 잇달아 들이키며 행복을 충전한다. 너무 지나치면 비행기를 못 탈 것 같아 나름 자제하며 마셨다. 조금씩 따라서 맛만 보는데 그 종류를 좀 여러 개로, 마치 시음회에 온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프레스티지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오늘 탈 비행기 좌석이 대한항공 프레스티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말 피땀눈물로 마일리지를 모았더랬다. 이왕 마일리지를 쓸 거라면 가장 효율이 좋은 곳에 쓰고 싶었고, 그게 우리 여행지를 발리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같은 마일리지를 사용하는 동남아 권역에서 가장 먼 곳, 심지어 좌석은 최신형 좌석인 프레스티지 스위트 2.0이다. 더 널찍하고 더 편안하며 칸막이로 프라이버시 보호까지 된다고. 만세! 피치야 이거 또 언제 탈지 모른단다. 피땀눈물을 한 바가지 더 모아야 그때 또 탈 수 있다. 탈 수 있을 때 잘 즐겨야 한다.


프레스티지 처음 타는 티를 내지 않으려 담담한 척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 이코노미석을 이용할 때 priory 우선 탑승을 흘겨보며 ‘이 지독한 자본주의 세상‘을 외쳤는데, 이번에는 내가 먼저 타게 되니 이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자본주의 만세! 승무원 분들의 환대를 받으며 친절하게 좌석까지 안내를 받았다. 좌석 배치가 1-2-2-1로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만 혼자 떨어져 앉았다.


외롭게 혼자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내리 세 편이나 봤다. 무려 코스로 제공되는 식사를 즐기고 아까 라운지에서보다 한두 등급 더 높은 꼬냑과 위스키, 와인을 즐겼다. 평소 비교 시음을 해볼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라운지와 비행기에서 마음껏 비교해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았다. 시음 결과, 난 꼬냑보다는 위스키가 잘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오는 음식마다 하나같이 맛있어서 그렇게 배고프진 않았는데도 남김없이 싹싹 먹었다. 마치 사육당하듯 하나 둘 받아먹다 보니 배가 엄청 불러왔다. 이제 좀 자제할까 하던 차에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향긋한 라면 냄새가 풍겨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고 홀린 듯 끓인 라면을 주문했다. 그래, 배가 불렀지만 아직 터질 것 같진 않았으니까. 라면이 나오는데 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나 말고도 여기저기 주문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확실히 처음보다 라면 냄새가 여기저기서 입체적으로 풍겨왔다. 그리고 드디어 내 라면도 나왔다. 사진을 한 장 찍고는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넣었다. 와…!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지? 면발은 얇지만 탱글 했고, 국물이 깊이 배어 있어 겉돌지 않았으며, 쫀득한 황태채가 풍미를 더했다. 국물은 칼칼하면서도 시원했다. 뭔가 씐 듯 끝까지 싹싹 비웠다. 군대에서 비 오는 밤 당직근무 중에 당직사관님과 의기투합해서 끓여 먹었던 라면 다음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이 아닌가 싶다.


22시 30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다. 진짜 일곱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휘리릭 지나갔다. 비행시간이 이렇게 짧아도 되는 건가 싶다. 앞으로 일곱 시간은 더 타도 될 것 같은데. 돌아오는 비행기는 제주항공 이코노민데 그것도 밤 비행기, 죽었다. 아직 한참 남았으니 미리 생각하지 말자.


발리의 교통체증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첫날 숙소는 공항과 가까운 곳이 아니라, 아예 우붓으로 정했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막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클룩에서 미리 차를 예약해두길 잘했다. 차량 문제로 잠시 출발이 늦어졌다. 결국 새 기사님이 배정되었다. 기사님은 무척 친절했다. 다만 밝은 미소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험한 운전이 조금 무서웠는데, 이 때는 몰랐다. 발리에선 그게 정말 얌전한 운전이었다는 것을.


드디어 첫날 숙소인 야라마 코티지에 도착했다. 잠만 잘 숙소였기에 숙소 컨디션보다는 저렴하지만 위치가 괜찮은 곳으로 골랐다. 하지만 솔직히 숙소 상태가 어떤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피곤했고 졸리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잘 도착한 게 어딘가. 24시 30분, 한국 시간으로 1시 30분, 씻는 둥 마는 둥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내일부터 진짜 발리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