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로에

by 감자도리

작년 6월 알로에 화분이 생겼다. 다육이도 아니고 알로에 화분이라니. 다른 품종과는 달리 잎이 크면 바로 먹을 수 있다는 특징보다 잘 죽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더 와닿았다. 오늘을 키워내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였다.

매달 1회 물을 듬뿍 주고 햇빛을 쏘이어 주면 알아서 잘 큰다는 말에 해가 잘 드는 베란다 구석에 오늘의 자리를 만들었다. 반년 동안은 알람을 설정해 두고 물을 주고, 해가 비치지 않을 땐 자리도 옮겨가며 오늘을 가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파리 2개가 갈색으로 변해갔고, 다른 이파리마저도 점점 색을 잃어갔다.

처음엔 마음이 쓰였지만 설마 죽겠나 싶어 겨우내 오늘을 잠시 내버려 두었다. 물도 주지 않았다. 빨래를 널 때 흘깃 눈길을 주면 당장이라도 흙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모습에 더더욱 오늘을 포기했다. 올해 3월, 오늘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삶을 포기한 것처럼 갈색의 이파리는 풀 죽어 있었다. 나는 오늘을 쓰레기통으로 버릴지를 고민하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직장생활 6년 차. 나는 어느덧 신규도 아닌, 그렇다고 잔뼈가 굵은 경력직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에 서 있다. 버티기만 하면 롱런할 수 있는 직업군이어서 성취감과 신선함과는 등을 돌린 채 보낸 6년이다. 한껏 성장하리라는 거창한 애사심도 없고, 그렇다고 성장할 곳을 찾아 떠날 용기 없이 하루하루 갈변하고 있는 그저 그런 30대의 직장인일 뿐이었다.

애를 썼던 흔적이 있다면, 지사에서 지역본사로 근무 환경을 바꿨던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자잘하게 하던 지사에서 업무의 큰 덩어리 두세 개를 맡아하는 지역본사로. 관리자와의 불화로 마음이 고되었던 나에겐 한 줄기 탈출의 햇빛과 같은 곳이어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양을 좇아 뛰쳐나왔다.

숨통이 트이는 오늘들이 보통의 오늘이 되었다. 인정받는 실무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 찾아보고, 싸우고, 버텨냈다. 햇빛으로 나와 꾸준히 물을 먹어서 그런 걸까? 건조하게 말라가던 날들에 숨이 붙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일한 지 4년 차, 내 오늘은 다시 지리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문득 오늘의 존재를 깨달았다. 이제 진짜 치워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손에 들었다. 오늘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려던 찰나, 나는 보고 말았다. 죽어가는 갈색 이파리 사이에 구겨지듯 자라나는 초록의 오늘을. 나 여기 있다고, 나 살아 있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바득바득 얼굴을 내미는 작은 생명을.

6월의 더운 여름날, 오늘은 강렬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작은 숨을 쉬고 있다. 저의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모양새가 가련하다. 6월의 시원한 여름밤, 나는 살아내고 있다. 파리하게 죽어가던 어제를 벗어나 다가올 내일을 버텨내는 힘을 모으기 위해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오늘 밤을. 안녕,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