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색채가 화려하고, 무쇠같이 차갑고, 명품 반지처럼 반짝이는 노래들을 즐겨 듣는다. 듣고만 있어도 현실과 동떨어져 잠시 나를 제3의 세계에 머물게 해 줄 수 있는 노래들. 무거운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뿌연 안개로 가득 찰 때면 서큘레이터 바람 같이 세찬 노래들을 들으며 하얀 커튼을 불어 내곤 한다.
살아내는 인생의 순간마다 즐겨 듣는 노래들이 달라지는데, 20대의 나는 오히려 조금 무채색이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투박하며, 소소한 노래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노래일지라도 너무나 까맣고 긴 터널을 걸어가고 있던 나에게는 끈적한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하는 무형의 친구였음은 분명하다.
강철 갑옷이었던 교복을 벗고, 면 티셔츠 쪼가리 한 장 걸친 20살의 나는 늘 흑색에 가까운 회색 인간이었다. 기분이 하얀 날에는 내면의 까만색을 감추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파스텔 톤의 물감을 입혔고, 기분이 까만 날에는 안온하게 색칠한 마음은 어느새 내면의 까만색이 잡아먹은 지 오래였다.
20살부터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학교 다니는 내내 장학금을 받지 않은 적도 없다. 학비를 충당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남들보다 공부를 1-2시간 더 하는 것이었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남들보다 시간을 더 쪼개서 쓰는 것이었다. 카페, 뷔페, 학원, 과외, 옷가게, 선거캠프, 시험감독, 일회성인 일부터 1년 이상 일한 일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처절하게 닿기 위함이었다.
지폐 몇 장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내 삶의 테두리가 100m씩 좁아들어 오는 것 같았다. 결국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차렷 자세로 내 삶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버스 안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석양을 보며 듣던 노래들은 내 좁은 테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무심하게 튕겨내는 반주와 담담하게 내뱉은 노래 가사들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돌 말아 어디론가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아스팔트 노면처럼 거칠거칠한 노래들은 나를 현실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내 20대만큼은 떼어지지 않는 접착제처럼 따분하게 흘러간 듯하다.
얼룩투성이인 나를 동행했던 노래들은 여전히 2010년대에 남아서 그 시절의 나를 살아있게 한다. 가끔 의도치 않게 내 동반자들을 듣게 되면 치열하게 버텨냈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게 된다.
20대의 나와 함께했던 무채색이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투박하며, 소소한 노래들은 이제는 내 인생의 무지개색 팔레트가 되어 내 30대를 알록달록한 세상으로 만들어준다. 오늘도 단단하게 읊조리는 노래들에 위로받으며 하얀 별들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