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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늦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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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관 Feb 25. 2021

엉킨 생각마저 품은 포근한 첫 요리

사연 있는 파스타 1. 청양고추 브로콜리 두부 알리오 올리오

사연 있는 파스타 1. 청양고추 브로콜리 알리 올리오


인생 첫 요리를 기억하시나요? 저마다 각자의 계기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홀로 갇혀있던 복잡한 머릿속을 환기하고 생각정리를 위한 생산적인 활동을 찾던 중 막연하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 서툰 표현 탓에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 어려움을 겪으며 갖은 푸념들이 머릿속을 맴돌던  무렵, 일상  도피처와 집중할 거리를 찾던  처음 요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요리가 가장 만만할까 고민하던 중 평소 즐겨 먹던 파스타, 그중 가장 기본이라 손꼽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괜한 객기 속에 평범함을 거부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던 탓에 어딘가 삐딱한 한 그릇이 나왔습니다.




재료

마늘 12쪽, 청양고추 1개, 브로콜리 1/3개, 양파 1/2개, 삶은 계란 1개, 두부 반 모, 링귀니 1인분

올리브 오일과 마늘, 페퍼론치노 등 단순한 재료구성이 특징인 기존의 알리오 올리오와는 다소 다른 모습의

재료들이 나왔습니다.


페퍼론치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탓에 청양고추면 알싸한 향미를   있지 않을까 하는 삐딱한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와중에 맵기만 하면 속상한 기분이 더해질  같아 부드러운 맛을 떠올리며 두부를, 그리고  다른 담백함을 찾던  엉켜있는  머릿속을 닮은 브로콜리를 더하게 됐습니다.


조금은 답답해 보여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삶은 계란은 덤으로 올려보았습니다.




4컷 레시피


1. 마늘 6쪽은 다지기, 나머지 6쪽과 청양고추는 편 썰기 하며 양파는 잘게 썰어줍니다.


2. 두부 반모와 브로콜리 1/3조각을 각각 뜨거운 물에 데친  키친타월을 통해 물기를 제거해 줍니다. 이후 잘게 썰어준  섞어 줍니다.


3. 8분가량 링귀니 면을 삶는 동안 올리브 오일로 코팅해둔 팬에 마늘·청양고추-양파 순으로 볶아주며 소금 반 스푼, 후추 한 스푼 정도로 미리 간을 맞춰줍니다. 면은 1L의 물에 소금 한 스푼을 넣어 삶아 줍니다.


4. 면이 익은 이후 올리브유로 볶은 채소들에 면과 약간의 면수와 올리브유를 곁들이고 이때 미리 준비해둔 두부와 브로콜리 또한 넣어주며 골고루 휘저어 섞어줍니다. 접시에 플레이팅  이후 고명으로 삶은 계란  개를 올려 마무리해줍니다.




사실 맛을 기대하고 만든 요리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저 잠시나마 잡념을 잊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알싸하게 베인 마늘과 청양고추의 향을 부드러운 두부와 브로콜리가 감싸주는 듯한  파스타의 맛은 예상외로 조화로웠고,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재료들이  그릇 속에 사이좋게 어우러진 느낌이었습니다. 함께 곁들인 키위주스도 자칫 심심할  있는 파스타의 맛에 생기를 더해주었습니다.


함께해도 서로 다른 마음인듯한 관계에 지쳐있던, 그럼에도 애써 외면하며 부딪혀  용기   내지 못했던  당시의 저와는 다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있진 않았을까 하는 늦은 후회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요리에도 순서가 있듯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깨달은  같습니다. 조금만  빨리 서로 진솔하게 터놓고 대했다면 우리의 오늘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이후로 틈틈이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홀로하는 고민에 너무 오래 갇혀 있지 않으려 하나하나 종이 속에 흘리고 정리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너무 늦기 전에  순간의 어려움과 마주하려 노력 중입니다.  


평소 우유부단하고 추진력이 부족하던 저는, 요리를 통해 작은 생각의 전환점을 찾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고 무언가를 새롭게  방식대로 만들어 가면서 엉킨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  숨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즐기게 됐습니다.


비록 어떠한 잣대에선 비전문적이란 비판을 피할 순 없겠지만 '잘하려고'가 아닌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취미생활을 통해 나만의 새로움을 만들고 찾아가는 성취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  해괴한 파스타가 건넨 포근한 맛의 위로 속에서 엉킨 생각의 고리를 차근히 풀어내던  날의 기억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늘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foodie_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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