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이유
며칠 전, 서울에 사는 큰아들이 인스타그램에 직접 만든 요리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먹을 요리는 아니겠구나.’
‘누군가를 위해 만든 것이겠지.’
‘요리를 해줄 대상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다수보다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요리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혼자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고추장 양념에 오리고기를 볶고 있었다. 마늘종과 버섯도 곁들였지만, 그것들이 고기 속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섞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렇게 요리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나도 남편도 마늘종이 눈에 띄건 말건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토록 재료를 숨기려 애쓰는 걸까? 그건 바로, 야채를 싫어하는 우리 막내아들을 위해서다.
잠시 후, 머리가 베개에 눌려 삐죽삐죽한 모습을 한 사내아이가 식탁으로 다가온다. 이제 막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다. 아들은 나를 보며 살짝 웃더니 조용히 식탁에 앉는다.
아직 밥이 놓이기도 전인데 고기부터 집어 먹는다.
예상대로 아들은 고기 사이에 숨어 있는 버섯과 마늘종을 정성스레 밀어내며 고기만 골라낸다. 쓰고 있는 안경이 야채와 고기를 구분해 주는 ‘요리 탐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늘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역시나 실패야.’
그나마 고3인 둘째는 어른 입맛에 가까워졌다. 고기만 먹다가 마늘종에 관심을 보이며 젓가락으로 집어 든다.
“이게 뭐야?”
“아~ 그거? , 마늘종이야. 요즘이 제철인가 봐. 마늘 줄기라 영양도 마늘 못지않아~”
나는 슬쩍 얼버무리며 설명한다.
다행히 아들은 그 마늘종을 입에 넣는다.
성공이다.
‘아, 다 컸구나.’ 싶어 마음이 찡하다.
내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건 아마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첫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부터 였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니 나도 큰아들처럼 연애 시절, 좋아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에게 해준 첫 요리는 북엇국이었다.
북어나 콩나물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참기름만은 분명히 오뚜기표였다.
그게 내 생애 첫 요리였을까?
아니다.
사실, 내 첫 요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 짐을 싸서 집을 나가셨고, 일주일 만에 돌아오신 일이 있었다.
그 공백 속에서 나는 된장국을 끓였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물에 된장을 풀고, 호박이라고 생각했던 오이를 깍둑 썰어 넣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국을 드셨다.
그리고 호박이라 생각했던 야채가 물컹이는 오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다. 맛이 없다는 말씀 한마디 없이, 어색한 얼굴로 국물을 드셨다.
그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왜 요리를 했을까?
지금에야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머니가 부재 중이던 그 날, 아버지는 너무 작아 보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힘이 되는 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직장어린이집에서 일한다. 어린이집에서는 최소 1년에 2번 소풍 일정이 있다. 소풍을 갈 때는 학부모님들에게 자녀의 도시락을 준비하도록 안내한다. 거의 95% 이상이 맞벌이 부모라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을 싸면서 동시에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올해에는 교직원들에게도 점심비를 지급하며 개인 도시락을 싸 오도록 권유했다. 많은 어린이집이 이제 도시락도 맞추는 실정이지만, 우리 교사들은 알고 있다.
부모님들이 정성껏 준비해준 도시락 뚜껑이 열리는 순간, 그 속의 색감들이 꽃이 되어 이야기로 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도시락 속의 스토리가 다양할수록 우리 아이들에게는 소중하고 즐거운 소풍이 된다. 준비하는 수고로운 부모님들의 정성이 아이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알고 있다.
요리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변형이다.
초보자에겐 더더욱 그렇다. 사랑은 자신의 변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요리하는 이유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