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토세무사 Sep 28. 2021

열람실의 동지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대학교 때의 나는 하루에 약속이 두 개씩 있는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친구도 스스럼없이 사귀었다. 과대나 동아리 회장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딜 가도 마음 맞는 친구를 쉽게 사귀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직장은 무서운 곳이었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비꼬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모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 적막한 분위기를 깨고자 "차장님 저 이번 주 주말에 소개팅해요!"라고 말했는데 차장님은 "얘 진짜 웃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가 먼저 소개팅한다고 얘기하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모 여행사에서 일할 때에는 사수가 일을 친절히 알려주고 가끔 나가서 커피를 사준다는 이유로(편의점 커피였다) 과도하게 친절한 거 아니냐는 수군거림을 듣기도 했다.


약 10개월간 직장생활을 해보니 회사에서 내 얘기를 해봤자 득 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다니는 게 최고였다.

그때부터  MBTI가 ESFJ에서 ISFJ로 바뀌었던 것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수험공부를 하러 학교 도서관으로 돌아왔지만, 대학생 때의 활발했던 성향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교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취업을 했거나, 학교를 떠난 상태였다. 남자 친구가 있긴 했지만 남자 친구는 고시반에서 공부하고, 나는 일반 열람실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사실상 따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11시까지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말을 하도 안 해서 말하는 법을 까먹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완전 혼자는 아니었다. 열람실에는 함께 공부하는 암묵적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람실에서 한 달 정도 공부를 하다 보니 누가 무슨 공부를 하고, 몇 시에 열람실에 오고, 몇 시에 집에 가는지 등이 파악이 되었다. 그중에는 나처럼 세무사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묘한 경쟁심과 동질감을 느꼈다. 지나가면서 무슨 공부를 하나, 어떤 강의를 듣나 슬쩍 훔쳐봤고, 일요일인데 나보다 먼저 출석체크를 해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먼저 말을 걸고 같이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번 고민만 하다 마음을 접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1월, 그러니까 공부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세무사 공부를 하지 않냐고, 자기는 1차에 합격해서 2차 준비 중인데 1차 문제집이 필요하면 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문제집을 받고, 오다가다 인사를 하고, 가끔은 밥도 같이 먹었다. 무엇보다 강사, 강의에 대한 정보교류가 이루어졌다. 나보다 일 년 먼저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는 게 많았다. 특히 그분이 강력하게 추천해준 강사가 있는데 그 강사 덕분에 합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사회생활에 주눅 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그래도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수험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함께해도 힘든 시기인데 혼자하면 더 힘들다.

용기를 내어 동료를 만들자.





혹시 세무사 공부에 관한 자세한 수기가 궁금하다면, 프로필에 있는 URL을 통해 네이버블로그로 놀러 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