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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토세무사 Aug 06. 2021

인턴하러 세종시까지 가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

전환형 아님 주의


퇴사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세상모르는 스물넷의 착각이었다.

보름 정도 해방감을 만끽하는 날들을 보내고 나니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없어졌고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없어졌다.

'단기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때 나는 단기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나름 공기업 준비를 한다고 NCS책을 샀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이 시작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공기업 준비를 하지 말고 다른 사기업으로 이직을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책을 한 장 넘기다가도 채용공고 사이트를 살펴보았고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의 기업'을 발견하면 곧바로 지원했다. 그러다 괜히 퇴사했나 싶어서 눈물이 나고 다시 책을 보고..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삶에 방향이 없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여전히 똑같은 패턴의 하루를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한 공고를 발견했다.

세종시에 있는 공공기관의 회계팀 인턴 채용공고였다. 환경 정책을 연구하는 공공기관이었다. 여긴 꼭 지원해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이랑도 맞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지역이 세종시였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환형 인턴도 아니었지만 인턴 경험만으로도 나중에 다른 공기업에 지원할 때 좋은 이력이 될 것 같았다.


당장 지원을 했고 일주일 뒤 서류에 합격했다.

면접을 보러 난생처음 세종시에 갔다. 세종시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도시였지만 어딘가 적막했다.

면접은 5:1의 다대일 면접이었다. 면접관이 다섯 명이나 되었지만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

그때 면접관이 했던 질문 중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질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회계팀에 지원했는데 관련 자격증이 하나도 없냐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미리 준비한 답변을 했다.

"저도 그 부분이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인턴기간 동안 재경관리사, 전산세무 자격증을 취득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기억나는 질문은 면접 학원을 다녔냐는 것이었다.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을 했지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만약 이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그 질문의 의미는 "너의 면접태도가 너무 획일화되어서 개성이 없다"는 것일 테고, 합격한다면 "학원에서 준비한 것처럼 능숙해 보인다"는 것일 테다.


개인적으로 면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있는데, 바로 면접관의 눈을 보면서 대답을 하는 것이다. 다른 회사의 면접에서 땅을 보면서 대답하거나, 로봇처럼 딱딱하게 대답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런 태도는 같은 지원자인 내가 봐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차별화를 두고자 면접관의 눈을 한 명 한 명 마주치면서 대화하듯이 답변을 하려고 한다. 실제로 너는 눈빛 때문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시 그날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30분 동안 질문세례를 받고 거의 발가벗겨진 채로 면접이 끝났다. 공격적인 질문을 많이 받아서 떨어졌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집으로 올라가던 중 전화가 왔다. 합격했으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렇게 평생 가볼 일 없을 것 같았던 세종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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