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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닝 프로그램스 (프로그램으로서의 디자인)』

by 규나
『디자이닝 프로그램스 (프로그램으로서의 디자인), 카를 게르스트너 (지은이), 박재용 (역), 안그라픽스.

카를 게르스트너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가능한 수많은 이미지 가운데 가장 최신성을 띤 이미지를 찾아내는 일”이라 정의한다. 그리곤 이러한 디자이너를 위한 프로그램 체계를 명료히 보여준다. 작동 과정을 낱낱이 해부하듯 펼쳐 보이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는데, ‘프로그램’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던 1960년대에 쓰인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정도인 듯도, 한편으로는 사고 회로를 마우스 포인터에 전가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손끝에 걸리는 컴퍼스에 맡겨야 했으니 타당한 조밀함인 듯도 했다. 모쪼록 확실한 것은 본문을 읽어 내림에 따라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선택’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비전문가로서는 알 길이 없는 ‘최신’이 채택되는 과정에 일련의 논리적인 프로그램을 이식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는 것이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60년을 돌아 번역된 글이니만큼, 당시의 인사들이 들였던 노력에 더해 현재에는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과정이 존재하지 않겠냐는 무언의 기대가 더해지기도 했다.



“타이포그래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인다는 점에서 예술이 아닌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술이다. 디자이너의 자유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의 경계가 아니라 핵심에 존재한다.”(p. 36)



근래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타이포잔치)’에 종종 방문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타이포그래피의 ‘신(新) 지평’으로 다뤄졌지만 나까지는 그들이 바라보는 지평을 미처 공유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주로 활자의 역할에 대한 문제에서 그러했는데, 위의 구절이 꽤나 인상깊었던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 시도를 거쳐 완숙해진 고민이 언젠가의 혁신으로 맺히는 것이겠지만서도, 역시 가장 간략한 답이 문제의 본질과 가장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곱씹혔다.




책의 디자인이 1964년 버전을 따르고 있다고 했는데, 당시의 ‘현대적인 감각’이 오늘의 현대적인 감각과 다시금 맞물리는 것 같아서 꽤 흥미로웠다. (별개로 글자 크기가 작아서 나중에는 눈이 아팠다. 다른 후기를 슬쩍 보니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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