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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

디트마어 엘거 저, 이덕임 (역), 을유문화사, 2024.

by 규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2024)


본 저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한 첫 번째 전기 『Gerhard Richter: A Life in Painting』(2002 초판)이 『게르하르트 리히터 : 영원한 불확실성』(2024)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이다. 국문 번역서는 2018년에 수정, 보완 발행된 3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리히터의 2017년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

images?q=tbn:ANd9GcRGWK9LleDmTb9r98u59KpSXbRlAsoQP23oQ0pOKAHfz5wUG2_p 『Gerhard Richter: A Life in Painting』

저자인 디트마어 엘거(Dietmar Eleger)는 리히터의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그와 함께하며 신뢰를 쌓았다. 때문에 본문에는 단순히 아카이브 자료를 손에 쥔 연구자의 건조한 분석과는 다른, 대상과 오랜 시간을 공유한 관찰자만이 지닐 수 있는 애정 어린 시선이 묻어난다.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저자가 자칫 자의적 서술로 어긋날 수 있는 경계를 능숙히 다루며, 객관적이고 전기적인 서술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전의 형식을 따르되 인과관계의 순리에 따라 직관적인 추론이 가능한 수준에서의 분석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리히터에 관해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가치있는 자료로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문 번역본에서는 리히터의 인터뷰를 따라 책 제목이 "영원한 불확실성"으로 바뀌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관련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더없이 친숙한 작가이다. 그러나 실상 국내에서 작품이 전시를 통해 소개된 적은 드물었기 때문에, 이 같은 책 제목은 작가 자체에 대한 친숙성과 이해도를 높이기에 매우 용이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라는 리히터의 인터뷰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나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이 그러했다. 그의 전체적인 작업 스타일이 변화하는 과정과, 작품 자체가 시사하는 바들을 놓고 보자면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는 리히터의 말이 얼추 맞는 듯 보이나, 대중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누구보다 명확한 지향성을 지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저자인 디트마어 엘거가 지목하듯 리히터는 대중의 인정과 상업적 성공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이는 작가가 꾸준히 공공 공간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작품의 형식과 주제의 궤적은 그의 삶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되, 모든 작업의 저변에는 작가의 열망과 얽힌 강력한 경향성이 존재했던 셈이다.


동시대 미술을 다루다 보면, 상업적인 방향의 추구를 배척하는 움직임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진정하고 순수한 예술'이라면 탐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마저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리히터의 평전을 읽다 보면, 상업성은 작품이 나아가야 할 길 혹은 그것의 형식이나 주제의 차원을 떠나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영역과 연결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주도하는 인간 주체의 어떠한 부분을 강력히 내보이길 원하고, 이로 하여금 타인의 이해를, 혹은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의지가 있을 때 이것이 대중과 밀착하며 '상업성'으로도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관계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모쪼록 리히터의 평전은 작가와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에 기여하는 한편, '예술'을 다룸에 있어 은연중 저항해왔던 '상업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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