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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Jan 20. 2024

결국엔 이야기

영화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 

근 20년간 탄생한 영화 시리즈물 중에서 가장 사랑받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해리포터, 캐리비안의 해적, 맨 인 블랙, 반지의 제왕, 트랜스포머, 헝거게임, 개중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까지. 셀 수 없는 시리즈들이 있을 것이다. 


실사 영화 한정으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제작된 3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된 2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작된 3편과 제작 예정인 1편까지, 개봉되고 제작 확정된 것만 해도 총 11편인 시리즈가 있다. 리부트를 거쳐 저작권 문제로 세계관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주연 배우가 총 두 번이나 교체되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시리즈, 스파이더맨의 장편 애니메이션 버전,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2022년 여름 개봉했다. 결국 이야기라는 것. 2015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개봉한 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골수팬부터 대중, 평단까지 모두가 열광했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이라 치부하고 영화관에서 감상하지 않은 필자는 이후 영화를 감상한 뒤 제때 감상하지 않은 것에 크게 후회했다. 본 리뷰에선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중에서도 본작이 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집대성인지,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영화 시장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여타의 히어로 영화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짚어볼 것이다.   


멀티버스

‘마블 스튜디오’의 시작인 <아이언 맨>부터 <어벤져스:엔드게임>이후 현재까지, 히어로 영화를 포함한 영화 시장에 꾸준히 사용되면서 의식된 개념은 ‘멀티버스’였다. 직역하면 다중우주로, 이 설정 하나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스튜디오끼리 힘을 합쳐 엄청난 시너지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세계관을 중점으로 한 개념은 영화를 벗어나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멀티버스의 개념이 ‘마블 스튜디오’로부터 온 것은 아니고(원작인 ‘마블 코믹스’에선 종종 사용되던 방식이지만), 이후 ‘마블 스튜디오’는 멀티버스 개념을 사용해 영화 역사상 가장 큰 수입을 거두었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그 전편은 이를 다분히 의식해 제작된 시리즈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일스 모랄레스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이후 다중차원에서 건너온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얻게되고, 마일스 세계의 스파이더맨은 악당과 싸우다 사망하게 된다. 이후 악당이 만든 차원 이동기를 통해 본인의 세계로 건너온 각기 다른 스파이더맨들과 함께하면서 진정한 영웅이 된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이야기는 멀티버스 설정에서 시작된다. 멀티버스는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중심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스파이더맨은 만화책으로 발간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캐릭터다. 실사 영화 한정으로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존 휴즈 감독의 ‘마블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 홈 시리즈 까지. 크게 세 개의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이들은 독립적인 세계관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패턴화된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시리즈건 주인공인 ‘피터 파커’는 일련의 동일한 사건을 겪게 된다.(마블 스튜디오는 이를 의식하고 패턴을 조금씩 변형하긴 했다) 부모님의 부재, 방사능 거미, 연인과의 문제, 삼촌의 죽음, 절친이 악당으로 변모하는 사건 등을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위에 나열된 패턴을 부수면서 탄생했다. 



클리셰

본작에서 마일스의 대척점에 서게 되는 인물인 미겔은 다중차원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 집단의 리더인 스파이더맨으로, 각기 다른 세계관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들에게 일련의 ‘공식 설정’이 파괴되지 않고 예정된 대로 진행되게끔 상황을 통제하며, 이를 방해하는 ‘변칙점’들을 찾아 제거한다. 미겔이 하는 일은 ‘스파이더맨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본작에서 반전으로 드러나는 것은 주인공인 마일스 모랄레스는 그 탄생부터 오류라는 점이다. 차원 이동기를 통해 방사능 거미가 마일스의 세계로 건너왔고, 마일스의 세계에는 마일스 본인과 이미 활동하고 있던 피터 파커, 총 두 명의 스파이더맨이 생긴 것이다. 마일스 세계의 피터 파커는 마일스를 지키다 사망한다. 게다가 방사능 거미가 존재했어야 하는 세상에는 뉴욕을 지켜야 하는 스파이더맨이 부재한 것으로 이르게 된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현재까지 제작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고 자란 관객들에게 ‘변칙점’이 된다. 스파이더맨이라면 으레 겪어야 할 사건들을 꼬이게 만들고, 절차 의례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있다. 사실 이것을 위해 제작되었다. “너는 진짜 스파이더맨이 아니다”라며 마일스를 제지하려는 사실상 모든 인물들(관객)에게 마일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은 마일스 모랄레스. 방사능 거미에게 물렸고, 나머지는 잘 알 거다.” 


본작은 꾸준하게 관객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많이 들었을테니, 마지막으로 설명해주겠다”는 식의 대사 말이다. 전작에선 클리셰를 비튼 위트있는 대사로 치부되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지만, 본작으로 넘어오면서 이 대사는 마일스라는 캐릭터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이야기에서 행동하는 인물을 지칭하는 ‘히어로’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마일스는 지금껏 쌓여온 탑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면서 그 자체로 ‘행동하는 인물’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주류 상업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 빌드업이다. 특정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재해석되면서 장르가, 패턴이 형성된다. 그리고 패턴화된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이를 부정하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 멀티버스, 캐릭터를 사용해 21세기에 제작된 모든 히어로물 중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이전의 패턴을 부정해냈다. 다른 영화들은 클리셰를 눈 감고 보이지 않는 척 하던가, 비켜가려고 노력한다. 본작은 보란 듯이 그것을 소재로 삼아 이제껏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캐릭터

캐릭터는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이야기는 캐릭터에서 오고, 동시에 그 반대로도 이루어지니까. 캐릭터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기도 하고 세계 자체가 되기도 한다. 제각각의 세계, 철학을 가진 캐릭터들의 충돌은 매력적인 에너지를 일으킨다. 본작의 이야기가 이토록 극적인 이유를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일스의 대척점에 서있는 ‘미겔 오하라’는 마일스의 전적을 미리 밟아온 인물이다. 공식 설정을 피해가려 애썼던 그는 그 대가로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을 잃었다. 미겔은 마일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본 것일 테다. 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마일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비난할 수 없다. 왜냐면 절대 다수의 관객은, 필자를 포함해, 미겔과 같은 입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생 좀 해야 성장한다”라고 다들 생각하며 그의 입장에 서 있을 것이다. 마일스의 스승격인 다른 차원의 ‘피터 파커’는 전작에서 마일스와 함께하면서 아이를 가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바뀌어 본작에선 자신의 딸아이와 함께 등장한다. 본작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스팟’에게선 많은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스팟은 문자 그대로 ‘구멍’으로 읽을 수 있고, 설정 구멍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팟의 능력은 구멍을 통해 여러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 설정과 클리셰를 소재로 만들어진 히어로물의 주요 악당으로 스팟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참고로 스팟은 영화에서 비유되듯, 등장 이후로 여지껏 3류 악당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본작에선 이보다 적절한 악당이 없을 것이다. 스팟은 후에 개봉할 3편에서 크게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일스의 탈출을 돕고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스파이더맨 ‘호비’의 배경이 영국 출신의 펑크족이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마일스 못지 않게 핵심적인 캐릭터, ‘그웬 스테이시’가 있다.


잠깐 그웬 스테이시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웬은 마일스와 상황이 비슷하다. 그웬과 마일스는 각각 서장으로 진급을 앞둔 아버지를 두고있다. 공식 설정에 따르면 서장이 된 아버지는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에 스파이더맨은 개입해선 안된다. 그웬도 이 설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일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그웬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일스는 거부한다. 운명을 거부하는 셈이다. 마일스의 행보를 지켜본 그웬은 그 사이에서 고뇌한다.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한다. 그웬은 마일스보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이 때문에 그웬은 가출한 상태로 몇 달을 지내다 영화의 후반부에 집에서 아버지와 대면한다. 그웬은 여느 청소년과 다름없이 본인의 주장을 펼쳐놓지만 늘상 그렇듯, 부모님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에 몇 번이고 어긋났던 말다툼처럼 그웬이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 그웬의 아버지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그웬의 아버지가 경찰직을 그만둔 것이다. 그웬의 세계가, 패턴이, 그의 운명이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딸이 스파이더 우먼인 것을 알게 된 그는 직업대신 자신의 딸을 선택했고 이 선택은 (제 3자의 개입없이) 그 자체로 공식 설정을 무너뜨렸다. 그웬의 아버지는 죽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웬은 이것에서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팀을 짜기에 이른다. 운명에 상대할 팀 말이다. 이것은 필자가 말하려는 본작의 마지막 특성으로 이어진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이야기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필자가 알고 있는 히어로물 중에 가장 도전적인 형식을 띄고 있다. 바야흐로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감상하고 소비할지에 대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매일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제작되고 소개된다. 여기서 제작자가, 창작자가 소개하는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무언가를 오늘로 불러와 관객들이 보지 못한 국면을 보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칫 잊고 살아온 중요한 어느 순간을 복기시킬 수도 있고, 우리가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어떤 것을 선보이는지는 중대하다.   

   

“누구나 마스크를 쓸 수 있다”로 정의되는 스파이더맨 정신은 무엇일까? 전편에서 피터가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마일스를 붙잡고 말한다. “내가 또 망쳐버리면 어떡해?” 마일스는 이에 “모른다. 믿음을 가지고 뛰는 수밖에”라고 답한다. 마일스의 스승인 피터는 자신의 세계에서 연인 MJ와 끝이 좋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투자한 사업도 망하고, 홀로 고독하게 영웅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피터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가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터는 관객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넘어지고, 실수하고, 노력한다. 스파이더맨이 악당을 이기는 이유는 그의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서가 아니다.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은 포기하지 않아서 이긴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두 팔, 두 다리로 무너지는 지붕을 들어올리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를 멈춘다. 바들바들 떨면서, 정신을 잃어가면서 말이다. “누구나 마스크를 쓸 수 있다”라는 말은 이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대면하고 이를 고쳐내려 노력하는 것. 난관에 포기하지 않고, 일상의 지난한 미끄러짐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그 행위가 결국, 스파이더맨이 남들을 위해 애쓰는 영웅적인 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점 말이다. 피터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MJ를 다시 대면한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선 마일스와 그웬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히어로물이라는 가면을 벗기면 본작은 방황하는 청소년이 부모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는 이야기이면서 혼자라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절실하게 동반자를 찾는 10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웬의 아버지가 공식 설정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부재한 세상에서 마일스가 범죄자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웬이 끝까지 마일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터가 자식을 갖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피해갈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공식 설정을 무엇으로 상대해야 할까? 이 모든 것의 정답은 사랑이라고 영화는 얘기한다. 대화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진심이 아닌 말을 뱉더라도, 서로 사랑한다는 마음은 전해져야 한다. 애쓰고, 행동해야 한다. 본작은 결국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려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스파이더맨이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본작은 탄생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몇 번이고 재해석되고 사랑받아왔기 때문에 제작 가능했던 작품이다. 동시에 그렇게 사랑받은 캐릭터를 가지고 이다지도 획기적인 영화를 제작한 것이 신의 한수로 느껴진다. 작화는 업계 최고 수준이고, 음악과 수록곡도 모두 스타일리시하다. 무엇보다, 개성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의 할리우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수 많은 영화들이 과거 80,90, 2000년대에 성공했던 작품들에 기생하면서 기대 이하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으로 과거의 영광을 불러오려 애쓰기 바쁘고 오리지널리티가 선명한 작품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다. 이는 한국 영화계에도 대입할 수 있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리우는 2000년대에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이창동, 나홍진, 허진호, 류승완처럼 개성 강한 실력파 감독들도 이때 등장했다. 이후 프로듀서의 역할이 줄어들기도 했고, 도전적인 작품보단 먹혀왔던 콘텐츠를 반복하면서 침체기를 맞이했다. 완성도의 문제가 있기도 하겠지만, <외계+인>보단 <범죄도시>시리즈가 더 흥행하긴 하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야하는 것은 도약이다. 실상은 어렵다. 하지만 영화 산업은 해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각본을 가지고 신인 감독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까”라고 말한 적 있다. 도전이 없다면 예술적 성과는 있을 수 없고 영화 산업은 여전히 ‘볼 게 없다’는 현주소에 머무를 것이다. 필자는 이것에 절충안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어느 형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극장 개봉을 겨냥한 영화건, OTT제작 영화건, 중요한 것은 좋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를 선정하고 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생충>이후 약 4년 만에 한국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서울의 봄>을 관객들이 알아봤다. 필자는 관객들이 좋은 이야기를 알아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양질의 작품이 항상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어도, 좋은 이야기를 선보이겠다는 정신은 잃지 말아야 한다. 다루어지지 않은 세상을 다루고 가려진 환부를 드러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개봉한 것은 괄목할만하다. 결국엔 이야기다. 훌륭한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 지점을 뛰어넘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웬은 “제대로 된 밴드를 찾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만들었지”라고 말한다. 그웬은 우리보다 앞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웬의 영입 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관객이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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